[인생극장] 벽화 작가 이종구 어르신 (1)
[인생극장] 벽화 작가 이종구 어르신 (1)
  • 박영근 기자
  • 승인 2023.05.30 10:4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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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것을 위해 오늘도 붓을 든다
2012년경부터 사직1구역 주택가 담장에 벽화 그리기 시작
벽화 작가 이종구 어르신이 자신이 그린 벽화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청주시 서원구 사직1동은 현재 재개발이 한창이다. 사운로를 기준으로 무심천 쪽은 이미 아파트단지 건설 공사에 돌입했다. 펜스를 두르고 기존 주택 철거와 터 고르기 작업이 진행 중이다. 반면 사운로를 기준으로 청주의료원 쪽은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주민들이 살던 집을 비우고 다른 곳으로 이사하는 바람에 대부분 빈 집들이다. 그나마 호국로와 청주의료원 사이 산비탈에 지어진 주택들에만 주민들이 거주할 정도다.

옛 추억이 깃든 사직1구역. 이제 조만간 옛 모습들이 사라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하지만 이종구 어르신은 아침 일찍 그림 도구를 챙겨 집을 나선다. 요즘은 낮 기온이 높아져 그나마 아침에 서두르지 않으면 더운 날씨 탓에 그림을 그릴 수 없다. 승용차를 운전해 향한 곳은 호국로와 청주의료원 사이 산비탈 주택가. 현장에 도착한 이종구 어르신은 그림 도구를 꺼내 어제 그리다만 그림에 이어 그리는 작업을 시작한다. 아직 이른 오전인데도 그의 얼굴에는 땀이 흘러내린다.

사라져가는 것을 위해 오늘도 붓을 든 이종구 어르신. 그는 자신을 ‘벽화 작가’로 불러주길 원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한 철학자의 말처럼 그는 하필이면 사라져갈 ‘담장’ 캔버스에 마지막 추억을 새겨넣고 있는 것이다.

사직1구역 호국로변 담장에 그려져 있는 이종구 어르신의 산수화 작품.

 

그가 처음 벽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12~13년 전이다. 아마도 2012년쯤이다. 무심천 제방 밑에 인근 주민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통에 악취가 발생하고 미관상 좋지 않다는 동네 주민의 불평과 함께 그곳에 벽화를 그려놓으면 아무래도 쓰레기 버리는 사람이 사라지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아무래도 멋진 그림이 그려져 있으면 미관에도 좋고 쓰레기를 버리던 사람도 양심에 가책을 느껴 쓰레기를 버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종구 어르신은 동네 주민의 제안이 그럴 듯하다고 여겨 흔쾌히 수락하고 제방 옹벽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무심천 제방 변에서 간판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낮에는 생업을 해야 하니 벽화를 그릴 수 없었다. 생각 끝에 새벽 2시경에 현장에 나와 벽화를 그리기 시작해 동이 틀 무렵까지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서 나무와 시냇물, 짐승, 바위 등을 그려넣었다. 일종의 산수화였다. 그런 일과를 열흘 정도 반복한 끝에 길이 60미터에 이르는 벽화 작품을 완성했다. 당초 1미터 정도만 그려달라는 동네 주민의 제안으로 벽화 그리기를 시작했지만, 다 그려놓고 보니 첫 작품치고는 대형 프로젝트였다.

그 작품을 계기로 사직1동 주민센터에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당시 박재권 동장은 관내 주택가 담장에 벽화를 그려줄 수 있느냐고 제안했고, 이종구 어르신은 기꺼이 화답했다. 그리고 조만간 사라져갈 사직1구역 주택가 담장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벽화를 그리는 게 서서히 입소문이 나자 자원봉사자들이 나섰다. RCY(청소년적십자) 회원 100여명이 벽화 그리기에 나섰다. 이종구 어르신이 밑그림을 그려놓으면 RCY 회원들이 밑그림에 맞춰 색을 입혔다. 일부 아마추어 작가와 동네 주민들도 참여했다. 그러면서 담장 벽화가 하나둘씩 늘어갔다.

한편 벽화 그리는 일을 못마땅해하는 주민들도 있었다. 1~2년 후면 다 없어질 텐데 왜 수고스럽게 고생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미친놈 소리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앞다투어 자기 집 담장에도 벽화를 그려달라고 요청했다. 심지어 일부 주민은 왜 자기 집 담장에는 벽화를 안 그려주냐고 불평하기도 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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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우 2023-06-07 10:38:23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