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보리 작가’ 넘어 ‘생명의 화가’로 - 박영대 화백
[인터뷰]‘보리 작가’ 넘어 ‘생명의 화가’로 - 박영대 화백
  • 박상철 기자
  • 승인 2016.12.13 1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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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대 화백의 대표작 '황맥'(1976作)' / 사진제공=박영대

[세종경제뉴스 박상철기자] “하루도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밥 먹을 자격이 없다.”

자는 시간 빼고는 오로지 그림 생각뿐이라고 말하는 박영대 화백. 그가 눈뜨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붓을 잡는 일이다. 화창한 오후 한적한 카페에서 ‘보리 작가’로 유명한 박영대 화백을 만났다.

가장 한국적이면서 고향을 생각하게끔 하는 소재 '보리'를 통해 박영대 화백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보리알은 생명의 씨앗이다. 보릿고개를 겪으며 민족의 애환이 담긴 보리. 보리는 밥으로서의 식단으로만 그쳤을까? 아니다. 보리는 생명의 씨앗이었다. 모든 생명체의 근원인 씨앗을 통해 생명의 작가로 거듭나고 싶다는 그는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1978년 백양회 공모전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맥파' / 사진제공=박영대

그는 1978년 백양회 공모전에서 <맥파>로 최고상을 수상한 이래 삶의 애환이 담긴 보리를 독특한 기법으로 형상화하며 수십 년 동안 ‘보리 작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해 왔다. 그림 소재로서의 보리는 그에게 '보리 작가'의 별명을 안겨줬고 한국 화단에 보리 소재의 원조로 깊게 각인됐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언론의 주목을 받은 그는 직접 창립한 한․일 교류전을 통해 매번 30여 명의 작가들이 한국과 일본을 서로 오가며 민간외교를 펼치고 있다. 이러한 교류를 통해 후배 화가들이 국제적 감각을 키우고 서로의 가치를 비교하며 한국 미술의 발전에 힘쓰고 있다.

그는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는 나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주위의 지원과 후원이 있기에 가능했다”라고 말한다. 그에 보답하기 위해 그는 많은 작품을 기부하고 있다. “작품 기부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보고 즐겼으면 좋겠다”고 그는 말한다.

특히 지난해 충북대병원에 ‘맥파’를 기부한 것이 가장 큰 보람된 일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병원 1층에 전시된 그림은 하루에 2천~3천 명의 환자들이 오고가며 감상할 수 있으니 충북대병원이 최고의 미술관이라 할 수 있죠.” 아울러 그는 필요하면 지역사회에 더 많은 작품을 기부하고 싶다고 밝혔다.

보리작가에서 생명의 작가를 꿈꾸는 송계 박영대 화백 / 사진=박상철 기자

그는 후배들에게 일본 격언인 '잇쇼켄메이(一生懸命)'를 강조한다. 이는 ‘일생일대의 목숨을 건다’라는 깊은 뜻이 내포되어 있다. 즉, 그는 어떠한 일을 하든지 열심히 하는 수준을 넘어 목숨 바쳐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후배 화가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99%의 노력과 1%의 천재성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한평생 그림을 그린 대가지만 지금도 끊임없이 작품을 위해 고민한다.

보리와 함께한지 어느덧 50년. 붓 들 힘이 없을 때까지 그림을 그리겠다는 박영대 화백.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 '보리 작가'를 넘어 '생명의 작가'로서 더욱 건강하고 활발한 작품 활동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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