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식의 여행스케치] 부여 궁남지에 퍼지는 연향(蓮香)
[강대식의 여행스케치] 부여 궁남지에 퍼지는 연향(蓮香)
  • 정준규 기자
  • 승인 2016.09.27 13: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대식 수필가·사진작가] 옛 백제의 성도(聖都)인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가면 연꽃 향내 가득한 사적 제135호 궁남지(宮南池)가 있다. 처음 연못을 조성할 당시에는 큰 연못이었는지 모르지만 1965년경 복원공사를 진행하여 현재는 1만평도 안되는 정도의 규모만이 남아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왕 35년(634)조에는 “3월에 궁궐(사비성)의 남쪽에 연못을 파서 물을 20여리나 끌어들였다. 네 언덕에는 버드나무를 심고 연못 가운데에는 섬을 만들어 방장선산(方丈仙山)을 모방하였다”고 하였고, 같은 왕 39년조에는 “봄 3월에 왕과 왕비가 큰 연못에 배를 띄웠다”고 전해진다. 왕과 왕비가 연못에 배를 띄우고 뱃놀이를 즐겼을 정도라면 지금보다는 더 큰 규모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부여 궁남지

 중국의 이화원(頤和園)은 2.9㎢이지만 인공호수이고, 서호(西湖)는 면적 6.8㎢에 길이가 약 15km에 달하지만 역시 인공호수인 것을 보면 궁남지도 조성당시에는 규모가 작지는 않았을 것이다.

궁남지 중앙에는 포룡정(抱龍亭)이라는 정자가 있고, 주변에는 버드나무가 심겨져 있다. 길게 가지를 늘어뜨린 버드나무 사이로 정자로 들어가는 다리가 놓여져 있는데 옛 것이 아니라 최근에 돌로 만들었다. 포룡정이라 이름지은 것은 무왕과 관련된 탄생설화와 관련이 있는데 과부였던 무왕의 어머니가 연못 근처에 살다가 연못의 용(龍)과 정(情)을 통하여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 이름이 ‘서동(暑童)’이요 그가 나중에 백제의 30대 국왕인 무왕(武王)이라는 것이다. 가난한 과부의 아들이 백제의 왕이 되었다거나 「서동요」를 이용하여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를 얻었다는 내용으로 볼 때 서동이 범상한 인물은 아니었던 것 같다.

궁남지의 매력은 호수보다는 주변에 조성된 연꽃 밭이다. 부여군은 궁남지 주변의 전답을 사들여 연꽃 밭을 조성하였고, 지금은 연꽃 밭의 규모가 수만평은 될 것이다. 궁남지를 중심으로 주차장 인근을 제외한 전체에는 잎이 넓은 백련과 홍련을 심었다.

새싹이 올라오는 4월부터 연꽃이 피고 지는 8월까지는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나들이객들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룬다. 연꽃은 물을 정화시켜주는 식물인 동시에 뿌리는 식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식물이다. 요즈음은 백련을 따서 차를 우려먹거나 연잎을 이용하여 연밥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바람에 실려 오는 연향(蓮香)을 맡으며 몇 시간을 걸어야 할 정도로 드넓은 연꽃 밭을 거닐다 보면 세상의 근심 걱정이 모두 사라지듯 머리가 개운하고 상쾌해짐을 느낀다. 주먹만 한 홍련(紅蓮)이 봉우리를 만들어 올리는 것을 보면 앙증맞게 귀엽고, 커다란 그릇만큼 넓게 펼쳐지는 백련(白蓮)의 순백의 꽃잎을 보면 세상에서 미움과 증오, 적대적 생각이 모두 순화된 느낌이다.

 

궁남지에 핀 연꽃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날 연 밭에 서보면 떨어지는 비방울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수십만 명의 오케스트라 대원들이 아무런 악기도 없이 소리를 내는 장면은 장관이다.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솜털처럼 부드럽게 이어가는 하모니는 세상의 어떤 오케스트라도 흉내 내기 어려운 감동을 선사한다. 부드럽기는 요한스트라우스의 봄의 왈츠(voice of spring)보다 감미롭고, 때로는 베토벤의 제6번 교향곡《전원》4악장 천둥, 폭풍우에서 울려 퍼지는 격렬함도 느낄 수 있다. 자연이 만들어 내는 소리는 세상 그 어느 악기도 흉내 내지 못한다.

홍조 띈 수련 꽃이 궁남지에 가득하다

 봄에는 노랗고 조그마한 어리연과 손바닥만 한 잎 새 틈을 비집고 나온 홍조 띤 수련(睡蓮)이 핀다. 여름이 되면 어른 키만큼이나 큰 백련과 꽃이 크고 붉은색에 가까운 홍련이 피고, 여름철에서 9월까지 가시연과 빅토리아 연이 핀다.

야광연이라 불리우는빅토리아 연꽃(큰 가시연꽃)

 빅토리아 연꽃(큰 가시연꽃)은 낮에는 쉬었다가 밤이 되면 피어나기 때문에 야광연이라고도 부르나 정확한 명칭은 아니다. 첫날은 흰색이었다가 이튿날에는 점차 붉은 왕관 모양으로 화사하게 피어난다. 흰색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붉어져 흰색이 자취를 감춘다. 꽃잎은 밑으로 향하고 꽃술은 하늘을 향하는데 브라질 아마존강 유역과 볼리비아가 원산지이므로 월동이 되지 않아 다른 연꽃에 비하여 서식지가 제한적이라 한다.

궁남지 연잎 위로 붉은 꽃잎이 내려 앉았다.

  연(蓮)들은 화사하게 피어났다가 겨울이 되면 서서히 연밥만 남기고 시들어 간다. 연밥에 눈이 내리면 ET의 얼굴 표정을 닮은 연들이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에 기대어 소리를 낸다. 한여름 두껍고 커다란 잎들로 넘실대던 들판도 누렇게 시들어가는 연밥의 대공만을 남기고 버티다 기력이 다하면 수면으로 고개를 감추고 꿈을 꾼다. 다시 새봄에 환하게 부활할 꿈을 꾸면서.

 언제 가보아도 피곤에 지친 일상을 털어 낼 수 있는 장소가 궁남지 같다. 시골 고향 같은 들녘과 봄부터 가을까지 향기로운 연향을 뿜어내는 곳이며, 도심에서 느끼지 못한 정서적 편안함을 사시사철 느낄 수 있는 장소다.

 가족이나 연인 그리고 친구들과 찾아도 실망할 수 없는 곳. 멀리서 찾아와도 소비된 시간이나 돈이 아깝지 않은 곳. 부여의 기름진 땅과 천혜의 깨끗한 자연 환경에서 생산된 최고의 먹을거리가 풍성한 곳. 선조들의 숨결이 곳곳에서 배어나와 살아 숨 쉬는 유적지임을 느낄 수 있는 곳. 그런 부여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궁남지는 그래서 매력만점이다.

언제 어느 때라도 고향같은 푸근함을 느낄 수 있는 궁남지

  부여군은 오는 10월 7일부터 8일까지 1박 2일간 ‘2016 부여군 「사비야행」 백제의 밤, 세계유산을 깨우다’라는 행사를 갖는다. 야경(夜景), 야사(夜史), 야화(夜華), 야로(夜路), 야설(夜說), 야식(夜食), 야숙(夜宿)을 한꺼번에 보고 즐기도록 한 행사로 패키지 문화재가 집적된 지역을 거점으로 주변의 문화 시설과 연계한 야간 문화 향유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것이다.

 외국으로 달려가는 여행객이 금년 말이면 2,000만 명이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해외보다 우리나라에서도 찾아보면 얼마든지 좋은 여행지가 많고 프로그램도 감동적이다. 이제 시선을 국내로 돌리는 여유를 갖자. 그러한 행동이 침체된 경기를 회복하고 더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애국이다.

 

강 대 식 사진작가 · 수필가

 ▶충북사진대전 초대작가

 ▶충북 정론회 회장 

 ▶푸른솔문학 작가회 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