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식의 여행스케치] 충주호 천리길 삶의 흔적을 찾아서
[강대식의 여행스케치] 충주호 천리길 삶의 흔적을 찾아서
  • 정준규 기자
  • 승인 2016.08.02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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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식 사진작가 ·수필가

[강대식 사진작가·수필가] 고향! 가만히 불러 보면 참으로 정겨운 단어다. 자신이 나고 성장하며 자란 곳이기 때문에 애착이 가고,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들은 마을 곳곳에 서려있던 추억을 회상하며 그리움에 젖기도 한다. 그나마 자신이 태어나서 자란 고향을 온전하게 보듬고 살아갈 수 있으면 그 또한 행복한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고향을 잃어버리고, 망향의 동산에 서서 그리움에 눈물 흘리는 것 또한 가슴에 묻어버린 고향을 그리워하기 때문이리라.

 

충주호 강물 속에도 고향을 등지고 떠난 수몰민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물 맑고 깨끗하던 계곡을 막아 식수원과 농업용수, 발전시설을 돌리기 위하여 댐이 필요했다. 그렇게 인위적으로 만든 호수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충주호다. 1985년 충주시 종민동과 동량면 사이의 계곡을 막아 만든 다목적 호수인 충주호는 면적 67.5㎢, 댐 높이 97.5m, 댐 길이 464m, 저수량 27억 5,000ton의 규모이다.

충주댐은 충주 계명산 아래에서부터 단양 도담삼봉까지 천리(千里)가 넘는 길이를 자랑한다. 댐이 수몰되면서 저지대에 삶의 터전을 일구며 살아가던 사람들은 고향을 등지고 전국 각지로 흩어졌다. 문전옥답(門前沃畓)을 버리고 차마 고향을 등지지 못한 사람들은 인근 고지대로 이주했고, 가진 것이 없었던 사람들은 도회지로 나갔다. 그렇게 물속에 잠긴 고향의 흔적들은 갈수기(渴水期)가 되어 강바닥이 드러나야 옛 기억을 더듬듯이 나타나곤 했다.

 

유난이 봄 가뭄이 기승을 부린 금년에도 충주호는 가득 담아 두었던 물을 모두 토해내고 거북등처럼 갈라진 강바닥을 드러내 놓고 너털웃음을 짓고 있었다. 도무지 가느다란 물줄기조차 보이지 않고 텅 빈 초원 같은 강바닥은 여기가 호수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변해 버렸다. 집터자리 우물은 방치되어 흙으로 메어져 그 속에서 풀이 자란다. 마을로 들어가던 도로에 서 있던 나무들은 이제 앙상한 기둥만 힘겹게 서 있고, 도랑을 건너던 작은 다리는 폴짝 건너뛰어도 될 것 같다. 집터는 모두 허물어져 간간이 집 대들보를 받치던 돌들 정도가 간간이 집이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지만 동구 밖 우물은 아직도 또렷하게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충주호는 충주나루, 월악산, 청풍문화재단지, 단양팔경 구담봉, 옥순봉이 있는 장화나루, 단양나루, 도담삼봉까지 이어지는 뱃길이 아직도 관광객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수려한 자연경관과 깨끗한 물, 시원한 바람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장소이지만 충주호가 식수로 이용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오염원들이 호수 위를 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충주호는 충주시와 제천시를 비롯하여 주변 군 지역에 13억 톤의 생활용수를 제공하고, 12억 톤의 관개용수와 8억 톤의 공업용수를 공급할 수 있다. 홍수조절을 위하여 6억 톤을 방류할 수 있기 때문에 하류 지역의 만성적인 홍수와 가뭄피해를 막기 위한 역할도 한다.

 

가뭄으로 뱃길이 막히면 충주호 자락을 따라 걸어 보자. 걷다보면 여귀꽃으로 뒤 덮인 넓은 들판과 메꽃으로 뒤덮인 평지를 볼 수 있다. 예전에는 누군가가 농사를 지으며 곡식을 심었을 이곳이 심한 가문이 들어야 숨겨두었던 아름다운 비밀의 문을 열어 볼 수 있게 된다. 붉은 여귀꽃의 꽃대가 들판을 덮고 살랑거리는 마음에 물결치면 마치 꽃 분홍치마가 일렁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몽환적이다. 유람선을 타기 위하여 장회나루터에서 배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돌아가 버렸다. 사람은 간곳없고 사람들이 배를 타기 위하여 이동하였던 긴 통로가 텅 빈 상태로 끝자락을 조금 남은 호수에 닿아 있다. 배라고는 작은 소형 보트만이 정박하여 이곳이 나루터라는 것을 알려준다.

 

 

호수가 물이 말라 남은 한 모금 물이 겨우 작은 실도랑을 만들어 흐른다. 언듯 보면 호수가 아니라 작은 냇물이 흘렀던 지형 같다. 산자락을 휘돌아 흐르던 도랑에 비가 오지 않아 물이 말라버린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이곳이 몽고고원의 초원 같다. 연록색의 풀들이 자라고 실도랑이 흐르는 아름다운 초원이라면 이곳에서 뛰어 놀고 있어야 할 말과 양, 소들이 보여야 하는데 중요한 가축이 없다는 것이 어색할 지경이다.

 

청풍문화재단지를 지나 능강솟대공원 근처에 닿자 호수 바닥에 노란 기생초(妓生草)가 무리지어 피어 있다. 한해 또는 두해살이 풀인 기생초는 기생처럼 아름답다하여 기생초라 불린다고도 한다. 기생초는 우리 들녘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꽃이지만 흔하다 하여도 결코 가볍거나 천하지 않은 고급스러운 꽃이다. 키가 1m 정도인 기생초는 털이 없고 잎이 마주나며 2회 깃꼴로 갈라져 갈래는 선형으로 윗부분의 잎은 잎자루가 없다. 7~10월에 꽃이 피고 10~11월에 열매가 익는데 비슷한 꽃인 금계국과 비교해 보면 꽃술 부분의 꽃잎 판의 자색 색깔이 확연히 다르다.

 

수변지역은 홍수가 난 다음에 물이 가득할 때도 아름답지만 가뭄으로 그 속에 담겼던 물들이 모두 없어져 버린 다음에도 아름답다. 호수에 물이 가득하면 고향의 향수는 잠겨진 고통처럼 보이지만 가뭄이 들어 환하게 드러나면 고향이 마치 다시 생긴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극과극의 상황에서 어느 것이 더 좋을지를 고민하지 말고 두 가지의 상황을 모두 경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 지금은 충주호도 만수위에 가깝도록 호수에 물이 가득하여 숨겨진 고향의 순결을 접하기 어렵지만 기회가 되면 가뭄으로 신음하는 텅빈 호수에서 허전할 것 같지만 아름다운 고향의 추억 하나씩 들고 나오면 어떨까.

 

강 대 식 사진작가 · 수필가

 ▶충북사진대전 초대작가

 ▶충북 정론회 회장 

 ▶푸른솔문학 작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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