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민 음악칼럼니스트] 비발디 대 바흐(VIVALDI vs BACH)
[이영민 음악칼럼니스트] 비발디 대 바흐(VIVALDI vs BACH)
  • 이영민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2.12.29 0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비발디의 초상

바이올린을 몇 년 정도 배우게 된 학생이라면 중급정도의 레벨에 들어서며 본격적으로 협주곡이라는 장르를 마주하게 된다. 이전까지 배웠던 곡들이 소품 위주였다면 오케스트라 앞에 서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연주하는 무대 위의 장면을 상상하며 두려움 반 설렘 반의 마음으로 연습에 매달리게 되는데 그 작품이 바로 비발디와 바흐의 협주곡이다.

비발디는 그의 최초의 협주곡집 [화성의 영감] 작품3을 통해 모두 12곡의 협주곡을 세상에 선보였는데 그 중 6번 가단조의 협주곡이 어린 바이올리니스트들의 데뷔작품으로 가장 많이 연주되는 작품이고 곧이어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을 동료들과 함께 연주하며 앙상블에 눈뜨게 된다. 사실 이 협주곡들은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 중에서도 간간이 훌륭한 연주가 나올 정도로 난이도가 높다고 할 만큼은 아니지만 전문 연주가들도 높은 완성도를 위해선 많은 고민과 작업이 필요한 명곡(masterpiece)들이다.

이 명곡들의 두 주인공 안토니오 비발디 (Antonio Lucio Vivaldi, 1678~1741)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는 7살 차이로 대부분의 삶의 시간을 공유하고 있지만 정작 두 대가는 서로 마주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탈리아 특유의 생기발랄함과 명쾌함으로 청중을 사로잡는 비발디와 독일인의 특성인 치밀함과 건축적인 웅장함으로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바흐는 외견상 극과 극의 작곡가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의 기념비적인 작품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경심을 바탕으로 한 끈끈한 연결고리로 이어져있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의 기일이 7월 28일로 같은 날이다.

바흐의 초상
바흐의 초상

붉은 머리의 신부님으로 불리던 비발디는 사제서품을 받았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미사집전을 면제받은 후 베네치아의 소녀들을 위한 시설인 피에타 고아원의 아동들을 상대로 음악감독직을 맡아 활동하게 된다. 이런 연유로 그는 수많은 협주곡들을 쏟아내게 되는데 [화성의 영감 L'estro armonico, Op.3], [라 스트라바간차 La Stravaganza, Op.4], [화성과 창의의 결합 Il cimetno dell' armonia e dell' inventione,  Op.8], [라 체트라 La cetra, Op.9] 등을 포함해 무려 500여 곡의 거대한 금자탑을 쌓아 올리며 전 유럽의 작곡가들이 그를 찾을 정도로 후기 바로크시대의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했다. 이토록 화려한 전성기를 구가했던 비발디였지만 새로운 시대의 음악사조로 인해 사람들에게 잊혀지게 되면서 그의 말년은 안타깝게도 가난에 허덕이다 쓸쓸히 타지에서 삶을 마감해야만 했다. 

이 잊혀진 대가의 숨은 작품들을 다시금 세상에 알린 작곡가가 바로 음악의 아버지 바흐였다. 그는 자신이 동경했던 비발디의 생기발랄한 작품을 편곡해 자신의 작품집에 포함시켜 무대에 올리는 작업을 진행했고 이런 작품들이 200여년이 흐른 뒤 20세기 초에 재발굴되면서 협주곡 작곡가로서의 비발디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이루어지게 된다. 만일 바흐가 아니었더라면 현재 가장 인기있는 클래식 레퍼토리중 하나인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 또한 이탈리아의 어느 도서관 한켠에서 여전히 잠자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비발디의 [화성의 영감]에선 12곡의 협주곡이 다양한 솔리스트 구성으로 나타난다. 보통은 협연자가 1명인 형태이지만 이 협주곡집에서는 2명에서 4명까지 솔리스트로 나서 다채로운 음향을 선사한다. 
이 중 3곡을 바흐는 자신이 건반악기용으로 편곡하고 있는데 보통 한 대의 하프시코드나 오르간으로 편곡하고 있지만 10번 나단조의 네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만큼은 네 대의 하프시코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으로 편곡해 원곡과 같은 형태로 확장시킨다. 이는 자식들의 음악교육에 특별히 힘썼던 바흐의 노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는 어린 아들들과 함께 직접 연습하고 연주하기 위해 이 작품을 편곡해 보다 화려한 형태로 만들어냈다. 지금도 오케스트라의 무대 위에 네 대의 피아노가 함께 연주하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지난 7~80년대 독일의 총리를 지냈던 헬무트 슈미트(Helmut Schmidt)가 함께 연주한 음반이 있을 정도로 각 파트의 난이도도 웬만큼 실력을 갖춘 피아니스트라면 무리없이 연주할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에 축제분위기의 연주회를 만들어내기에 적절한 선곡이라 할 수 있다. 

생동감있는 화성으로 거침없이 써내려간 작곡가 비발디, 그리고 선배에 대한 존경과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작품을 재해석해낸 바흐 이 두 대가의 음악사적 접점을 직접 감상해 볼 수 있는 작품을 이 달에 추천해본다. 추천 영상의 연주에는 세계 클래식음악계의 정점에 자랑스럽게 서있는 우리의 젊은 아티스트들이 함께 하고 있다.

 

비발디- 네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 QR코드

https://www.youtube.com/watch?v=075vhm-Om8Q

 먼저 비발디의 원곡. 화성의 영감 중 제10곡 네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Concerto for 4 Violins in B Minor, Op. 3, No. 10, RV 580)을 김봄소리를 비롯한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의 우승자들과 막심 벤게로프가 함께 연주한다. 

 

 

바흐- 네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 QR코드

https://www.youtube.com/watch?v=HG3azNBAtIg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선택한 한국의 피아니스트 임동혁이 함께 한 바흐의 네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Concerto for 4 Harpsichords, Strings, and Continuo in A minor, BWV 1065). 2013년 파리의 플레이엘 홀에서의 공연실황.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