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민의 보들보들 클래식] 연말에 만나는 ‘호두까지 인형’ 감동
[이영민의 보들보들 클래식] 연말에 만나는 ‘호두까지 인형’ 감동
  • 이영민
  • 승인 2022.11.2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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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

나의 유학시절을 보냈던 독일은 매년 11월 말부터 12월 말일까지의 한 달 동안 거의 모든 도시의 중앙광장이 새롭게 옷을 갈아입는다. 이른바 바이나흐츠마르크트(Weihnachtsmarkt)라 불리는 성탄장터가 열리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축제기간에 열리는 야시장처럼 간이상점을 차려놓고 성탄절과 관련된 소품을 판매하거나 독일식 뱅쇼인 글뤼바인을 비롯해 이 시즌에 어울리는 다양한 전통적인 요깃거리로 눈과 입을 즐겁게 한다. 각 도시의 장터가 특색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이 시기에 인근 도시를 찾아보는 것도 소확행거리중 하나이다.

이렇게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연말 한 달을 성탄시즌으로 보내게 되는데 그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연주회로 각 지방의 극장과 교회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의 공연들이 쉴 새 없이 무대에 올려진다. 많은 음대생들이 이 시즌에 연주회를 통해 부수입을 톡톡히 올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여러 프로그램들이 상연되지만 크리스마스에 발레공연으로 호두까기 인형을 놓칠 수 없다. 특히 북미지역에선 그 인기가 드높아 식을 줄 모르고 몇 년 전엔 영화로도 새롭게 만들어져 많은 사랑을 받은 바 있다.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더불어 차이콥스키의 3대 발레로 일컬어지는 호두까기 인형은 E.T.A 호프만의 원작을 토대로 만들어진 발레음악이다. 모차르트를 사랑해 필명의 중간이름을 아마데우스로 바꿀 정도로 음악에 조예가 깊었고 실제로 작곡가로 활약하기도 했던 E.T.A 호프만은 낭만주의 문학가로 그의 신비롭고 몽환적인 작품의 분위기는 훗날 에드가 앨런 포우의 작품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고 수많은 낭만파 음악가들의 뮤즈였다. 프랑스의 작곡가 오펜바흐가 오페레타 호프만의 이야기를 통해 그의 작품을 무대음악으로 만들어 내었고 호프만의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대왕은 차이콥스키의 손을 통해 발레음악으로 거듭나게 된다.

차이콥스키는 1892년 그의 나이 51세 되던 해에 이 작품을 완성했다. 이미 명곡의 반열에 오른 대작을 수없이 발표해 낸 뒤여서 그의 명성은 그 어느 때보다 드높았던 시기였지만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고 동화적 스토리가 그리 탐탁치않았던 그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오페라극장으로부터의 의뢰를 받았지만 작곡의 시작을 꺼렸다. 하지만 완성된 그의 음악은 완벽히 원작의 분위기와 맞아떨어지는 것이어서 곧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작품으로 거듭나게 된다. 안타깝게도 차이콥스키는 이 작품의 초연 후 바로 이듬해 그의 마지막 교향곡 비창을 완성하고 세상을 떠나게 되지만 불행한 결혼생활에 아이도 없던 그가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보내는 크리스마스 선물과 같은 음악을 남기기 된 것이다.

1892 호두까기 인형 초연당시 무대스케치

 

이 작품에서 주목할 만한 또 한 가지 점은 바로 첼레스타라는 당시의 새로운 악기이다. 차이콥스키는 1891년 봄 연주여행을 떠나면서 파리를 경유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이 첼레스타라는 진귀한 악기를 발견한다. 이 악기는 1886년 파리의 악기제작자 아우구스트 무스텔이 고안해내 차이콥스키가 이 악기를 만났을 때는 제작된 지 5년도 채 되지 않는 새로운 악기였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업라이트 피아노처럼 생긴 악기의 건반을 누르면 현이 아닌 실로폰과 같은 철금의 소리가 울려퍼지는 악기인데 그 음색이 독특하고 환상적이어서 차이콥스키는 이 악기에 바로 매료되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작품에 초연되기 전까지 다른 누구에게도 이 악기를 보여주지 말라고 부탁하고 자신의 작품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결국 별사탕요정의 춤에 첼레스타를 사용해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음향을 작품에 효과적으로 훌륭히 녹여낸다. 차이콥스키가 그의 교향시와 호두까기 인형에 사용한 이후 쇼송, 말러, 홀스트, 바르톡, 거쉰 등의 작곡가가 이 악기를 작품에 활용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작품의 개요는 주인공 마리(또 다른 판본에선 클라라)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호두까기 인형을 받고 기뻐하지만 오빠의 장난으로 망가져버린 인형을 안고 잠이 들게 되는데 그녀의 꿈 속에서 모험을 펼치고 결국 왕자로 변한 호두까기 인형을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대체로 차이콥스키의 작품들이 비극적이거나 염세적 분위기가 강한 반면 이 작품에선 어린이와 장난감들이 주인공인만큼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음향으로 일관되고 그의 장기인 왈츠를 사용해 작품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다. 원곡의 발레는 2시간 가까이 걸리는 2막의 작품이지만 차이콥스키는 원곡에서 8곡을 발췌해 모음곡으로 출판한다. 작은 서곡에 이어 여섯 곡의 다양한 무곡들이 이어지고 꽃의 왈츠로 마지막을 장식해 연말 교향악단의 단골로 등장하는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하였다.

열심히 한 해를 달려온 끝자락에서 가족들과 함께 호두까기인형을 감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공연장을 찾아도 좋지만 편안한 거실에서 즐겨도 선물과도 같은 시간을 만들어주기에 충분하다. 그 영상을 지금 추천해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xtLoaMfinbU&t=232s

차이콥스키의 나라 러시아를 대표하는 마린스키극장 오케스트라와 발레단의 2012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공연실황. 발레리 게르기에프의 지휘로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발레의 화려한 전체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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