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큐레이터 변광섭의 마을이야기27] -평사십리에서부터 어은계석까지 자연의 길·역사의 길
[로컬 큐레이터 변광섭의 마을이야기27] -평사십리에서부터 어은계석까지 자연의 길·역사의 길
  • 세종경제뉴스
  • 승인 2022.09.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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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초평저수지 / 사진=충청북도
진천 초평저수지 / 사진=충청북도

왜 생거진천(生居鎭川)인가. 예로부터 쌀이 유명했으니 풍요의 고장이었다. 그래서 살아서는 진천에 사는 게 좋다며 생거진천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었다. 벼 재배에 유리한 지형과 기후, 차령산맥의 산줄기로 둘러싸인 분지지형, 찰흙으로 이루어진 토양과 미호천의 풍부한 수량, 풍부한 일조량과 큰 일교차가 질 좋은 쌀의 원천이다.
진천을 부르는 다른 이름이 있는데 바로 ‘상산’이다. 그래서 태어난 것이 상산팔경이다. 상산팔경은 빼어난 경치에 칠언율시가 지어져 전해 오면서 상산팔경만의 독창성을 자랑하고 있다. 오늘은 상산팔경의 이야기를 따라 돌아보자.
1경은 평사낙안(平沙落雁)이다. 문백면 평산리에서 은탄면 소두머니로 이어지는 10리 모래길이다. 겨울이 되면 10리나 뻗은 백사장에 기러기 떼가 내려앉는 모양이 장관이다. 그래서 평사십리라고 부른다. 조선후기 유학자 남동희는 “기러기 소리 용용하게 지나간 뒤 새벽하늘 밝아오는데, 모래는 십리나 깔리었고 파아란 물은 굽이굽이 도는구나”라며 이곳의 비경을 노래했다. 하동에는 섬진강 최참판댁 평사리가 있고, 진천에는 평산리 평사십리 모래밭이 있다. 이곳에 김봉곤 훈장의 선촌서당이 있다. 그는 산과 물이 어우러진 빼어난 경관을 찾아 전국을 다녔는데 이곳이 최고라는 생각에 전통 한옥과 누각 등을 지어 2013년에 문을 열었다.
2경은 우담제월(牛潭霽月)이다. 문백면 은탄리에 있는 큰 호수를 말하는데 미호천이 갈궁저리 마을을 휘감고 지나 펼쳐진 드넓은 강이다. 우담은 ‘소두머니’라고 부르기도 하고 이심이가 칡으로 묶어 놓은 소를 잡아먹어 칡넝쿨만 남았다는 전설이 있어 ‘갈탄(葛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비 개인 후 우담에 비친 달빛이 아름다워 우담제월이라 했던가.
3경은 금계완사(錦溪浣紗)다. 광혜원면 광혜원리 금계를 말하는데, 옛날에 충청도 관찰사가 경질될 때 신·구 관찰사가 이곳에서 만나 도장을 주고받고 하루를 함께 즐겼다고 한다. 공무를 수행하는 관원들을 위해 나라에서 임시 숙소를 운영했다 하니 오늘날 여관의 전신이다. 금계완사란 무엇인가. 금계라는 곳에서 옷을 빨고 몸을 씻는다는 뜻이니, 옛날에는 배를 띄어 물놀이 할 정도로 수량이 풍부했을 것이다. 
4경은 두타모종(頭陀暮鐘)이다. 초평면 화산리 두타산에 있는 옛 절영수암(靈水庵)에서 저녁노을이 질 때 치는 종소리의 정취이다. 두타산은 해발 598m로 초평호와 한반도 지형을 한눈에 내려보고 있는 산이다. 용의 전설과 임꺽정굴, 그리고 단군의 신하 팽우씨와 하우씨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5경은 상산모운(暮雲)이다. 이월면 사곡리에 있는 상산에 저녁노을과 구름이 감칠 때의 풍경이다. 이곳은 경기도 안산 칠장산을 시작으로 진천 무이산을 거쳐 태안반도 안흥진까지 이어진 267km의 산줄기인 금북정맥이니 그 아름다움을 말해 무엇하랴. 
6경은 농암모설(籠岩暮雪)이다. 문백면 구곡리 세금천의 돌다리인 ‘농다리’ 위에 흰 눈이 쌓인 풍경을 노래하는 표현이다. 농다리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다리다. 거대한 지네가 물을 건너가는 형상이라 하여 ‘지네다리’로 부르기도 한다. 원래는 교각 28칸에 길이가 100m 넘었는데, 지금은 교각 24칸에 길이 94m다. 고려 고종 때 임연 장군이 아버지 상을 당한 젊은 부인이 내를 건너는 것을 보고 용마를 타고 돌을 실어 날라 하루 아침에 다리를 놓았다는 설화가 있다.
7경은 어은계석(漁隱溪石)이다. 문백면 봉죽리 송강 정철의 묘소가 있는 계곡의 자연 풍경이다. 송강이 누구인가. 《사미인곡》, 《관동별곡》, 《훈민가》 등을 남긴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대가다. “한 잔 먹새 그려, 또 한 잔 먹새 그려. 꽃을 꺾어 술잔 수를 세면서, 한없이 먹새 그려…” 송강이 쓴 ‘장진주사(將進酒辭)’의 한 구절이다. 어은은 물고기가 숨어 사는 곳이라는 뜻이다. 옛날 마을 앞 성암천이 가뭄으로 물이 줄자 고기들이 은신처를 찾을 수 없어 비어산을 날아서 넘어와 어은에 숨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8경은 적대청람(笛臺晴嵐)이다. 문백면 평사마을 백사장에 한 암벽(臺)이 있는데, 옛날에는 그 위에 정자가 있어 가끔 신선이 내려와서 피리를 불며 놀았다고 한다. 화창한 날 이곳에 어른거리는 아지랑이 정경이 신비스러울 뿐이다. 평산리 평사마을에는 하늘 높이 치솟은 바위절벽이 있는데 평사십리 모래사장의 시작점이다.
하늘이 높고 푸르다. 햇살이 눈부시다. 온 세상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알이 꽉 찬 밤이 떨어지고 있다. 가을로 가는 길목에서 하늘을 보고 햇살을 본다. 들녘을 바라보며 쏟아지는 자연의 신비를 본다. 내 나이 쉰일곱, 내 삶에도 가을의 넉넉함과 풍요로움이 깃들어 있을까. 비움과 채움의 시간 성찰의 마음으로 가을 길을 걷는다라. 
 

사진 김영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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