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에 맡긴 시멘트기금, 10년째 갈등
자율에 맡긴 시멘트기금, 10년째 갈등
  • 뉴시스
  • 승인 2022.08.23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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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억 운영 단양 매포지역자치회, 주민들과 고소·고발전
주민, 현금 배부 요구 거세…기금위 구성 논의도 파행
기금관리 의혹 제기하는 단양 매포 주민들 / 사진=뉴시스
기금관리 의혹 제기하는 단양 매포 주민들 / 사진=뉴시스

문재인 정부 임기 말 국회는 충북과 강원 지자체의 시멘트 지역자원시설세(시멘트세) 신설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일부 국회의원이 낸 지방세법 개정안은 시멘트 생산량 1t당 1000원(40㎏ 1포대에 40원)의 목적세를 과세해 시멘트 공장 주변 지역 환경개선과 지역균형발전사업 등에 쓰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민의힘 소속 시멘트생산지역 국회의원들과 시멘트 업계는 주민이 자율적으로 사용하는 기금이 더 효율적이라면서 지역발전기금 조성을 조건으로 법안 철회를 요구했다.

결국 업계와 당시 야당 국회의원들의 뜻이 관철되면서 지난해 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기금 운영 성과를 우선 지켜보자"면서 법안 처리를 유보했다.      

충북·강원 7개 시멘트 회사가 매년 250억원 규모의 기금을 출연하기로 협약함에 따라 충북 제천시와 단양군 등 시멘트 공해지역 지자체는 기금관리위원회 구성을 추진 중이다. 기금은 강원 지역에 150억 원, 충북 지역에 100억 원을 배분할 전망이다.

그러나 충북도 등 지자체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기금은 (시멘트 회사의)자의적 기부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안정성이 없고, 시멘트세에 비해 금액도 적다"면서 여전히 지방세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자율에 맡긴 기금, 10년째 갈등만 양산

국내 대표 시멘트 생산기지인 단양군 매포읍의 성신양회와 한일시멘트가 마을발전기금을 내기 시작한 것은 2012년이다. 올해까지 10년 동안 매년 4억 원씩 총 40억 원이 모였다.

매년 기금 출연 약속 이행이 원활히 이뤄진 것은 아니다. 일부 업체는 경영난 등을 이유로 기금 납부를 상당 기간 미루기도 했다. 매포읍의 한 관계자는 "(회사에)사정해서 받은 것이 여러 번"이라고 술회했다.

시멘트업체의 정기적 마을발전기금 납부는 그동안 산발적이고 즉흥적이었던 주민단체의 후원 요구를 정례화하고 조직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매포읍 주민은 기금 관리를 위해 사단법인 매포지역자치회을 만들고 공공도서관 건물에 사무실도 꾸렸다. A이사장이 현재까지 운영을 총괄하고 있다.

그동안 매포지역자치회는 정관에 따라 기금의 이자 수입으로만 사업했다. 기금 적립액에서 발생하는 연 1000만~7000만 원의 이자로 마을 행사를 지원하고 방과후 학습 등 교육·문화 사업을 추진했다.

◇"찔끔찔끔 지원 체감 못 해…현금 배분하라" 반발 지속

큰돈이 생긴 매포읍 주민단체가 의견 수렴을 거쳐 추진하기로 했던 기금 사업은 세 가지였다. 마을 공동 목욕탕 건립, 세차장 건립, 현금 배분 등이다.

마을 공동 목욕탕은 단양군이 주민복지사업으로 채택하면서 기금 투입 없이 준공했으나 매포지역자치회가 지난해부터 추진한 세차장 건설 사업 과정에서 주민 갈등이 표면화했다.

시멘트 분진이 많은 지역인 만큼 1000~2000원의 저렴한 비용으로 세차할 수 있는 시설이지만, 차 없는 주민들의 반발로 1년 반이나 논란을 거듭했다.

매포읍에서 중앙고속도로 북단양IC 방면 도로 변에 있는 세차장을 짓는 데는 기금 40억 원 중 17억 원이 들었다. 애초 추산한 예산보다 농산물판매장 등 상가를 추가 조성하면서 총사업비가 늘었다.

지난 5월 매포읍 주민 300여 명은 단양군청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매포지역자치회의 발전기금 관리 실태를 감사하고, 수사하라"고 군과 경찰에 요구했다. 일부 주민은 매포지역자치회를, 매포지역자치회는 의혹 제기 주민을 맞고소한 상태다.

충북도는 주민 진정 민원 회신을 통해 "매포지역자치회는 법인세법 시행령이 규정한 공익법인(지정기부금 단체)이어서 연간 기부금 모금액과 활용 실적 등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단양군 매포읍 시멘트 기금으로 지은 세차장과 상가
단양군 매포읍 시멘트 기금으로 지은 세차장과 상가

 

◇현물·현금지원 전무…"다 죽고 나면 그 돈 쓸 건가"

매포읍 주민들은 집회에서 "40억 원은 매포지역자치회 법인 돈이라고 하더라"면서 "공해 보상금은 시멘트 공장에 가서 각자 알아서 받으라고 한다"며 분개했다.

70대 주민 B씨는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창문을 열기 힘들 만큼 분진이 많다"며 "한 때 발전기금으로 에어컨을 놔준다는 소문이 돌아 기대했지만 10년째 감감무소식"이라고 허탈해했다. 그러면서 "평생을 시멘트 먼지 마시며 살아 온 노인들 모두 죽고 나면 그때 그 돈 쓸건가?"라고 반문했다.

매포지역자치회 사업실적 자료의 지출 내역을 보면 대부분 인재육성과 화합행사다. 지역 초·중학생의 체험학습비를 지원하거나 마을잔치 비용을 보태는 데 썼다.

매포지역자치회는 정관을 근거로 현물·현금 지원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동산을 매입하는 등의 투자적 지출에만 기금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부에 부동산의 현재 가치를 기록할 수 있는 세차장 건설에 목돈을 지출한 것은 이 때문이다.

건강검진비용, 에어컨 등 가전제품 지원, 현금 배분 등 기금 잔고를 줄이는 경상적 지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정관인 셈이다. 지역 주민들이 집회까지 결행하면서 이를 요구하고 있으나 기금운용의 경직성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매포읍에 사는 C씨는 "충북도에 유권해석을 의뢰한 결과 정관을 개정하면 가능하다고 한다"면서 "경상적 지출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매포지역자치회의 거짓말"이라고 주장했다.

◇기금위 주도권 쟁탈전 벌써 과열…매포지역자치회 답습 우려

2012년 구성한 매포지역자치회와 올해 들어 시멘트 공해 지역에서 구성 중인 기금관리위원회(기금위)는 시멘트 회사가 낸 기금을 관리하는 기구라는 점에서 같다.

순수 민간 기구인 매포지역자치회보다는 인적 구성과 운영에 지자체의 개입 여지를 확대한 기금위가 우월한 공적 지위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와 업계는 기금위를 시·군 산하기구로 규정하고 있으나 이를 근거할 법령이나 조례는 아직 없다. 지역 국회의원, 지자체장, 지방의회 등이 추천한 인사와 지역주민 대표 등이 기금위를 구성하게 된다.

그러나 주도권 신경전이 치열한 단양 8개 읍면은 지역별 기금위 위원 비율에 아직 합의하지 못했다. 시멘트세 입법을 주장하는 제천시도 기금위 위원 추천을 거부하면서 공전하고 있다.

지난 6월 선거에서 국민의힘 지자체장 후보들이 당선하면서 지자체의 시멘트세 입법 요구가 약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기금 운영을 둘러싼 지역 내 소지역이기주의는 더 확산하는 양상이다.

단양군의 한 관계자는 "시멘트 광산 반경 거리에 따른 기금 배분 기준이 있기는 하지만 겹치는 읍면이 적지 않고, 이에 따른 기금위 운영 주도권 쟁탈전이 치열한 상황"이라면서 "기금위 가동 이후에는 이러한 갈등이 더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회는 올해 시멘트기금 운영 성과를 지켜본 뒤 시멘트세 입법을 골자로 한 지방세법 개정안을 연말에 다시 심사할 방침이다. 그러나 기금위 구성이 지연되면서 시멘트 업계가 출연한 올해 첫 기금은 8월 말 현재까지 제3의 기관에서 낮잠만 자고 있다.

시멘트세 입법과 시멘트 기금 조성의 목적은 모두 시멘트 공장 공해 지역 주민 지원이다. 논쟁만 하다 '산으로 가는' 민간 주도의 기금과 '유연성이 부족한' 관주도의 시멘트세 중 어떤 집행 방식을 선택할 지는 국회 행안위 법안 처리 결과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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