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큐레이터 변광섭의 마을이야기26] -그리움을 따라 걷는 자연의 길, 추억의 길
[로컬 큐레이터 변광섭의 마을이야기26] -그리움을 따라 걷는 자연의 길, 추억의 길
  • 글=변광섭, 사진=김영창
  • 승인 2022.07.20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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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나무
뿌리깊은 나무

 

시인 괴테는 “자연과 가까울수록 병을 멀어지고, 자연과 멀수록 병은 가까워진다”고 했다. 자연을 벗 삼아 사는 사람은 학력이나 경제수준과 상관없이 더 행복하고 건강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자연 속으로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서려는 것은 바로 행복으로의 초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북풍한설 몰아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봄꽃이 지고 여름 숲이 무성하다. 도시의 사람들은 숲으로, 바다로 떠난다. 누구는 고샅길을 걸으며, 누구는 초록으로 가득한 숲의 비밀 속으로, 누구는 망망대해 지평선을 바라보며 삶의 향기를 몇 점 만든다.
 그래서 나도 가방을 메고 길을 나섰다. 여기는 향수의 고장 옥천이다. 옥천 구읍의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며 교동집으로 들어갔다. 해 뜨는 쪽에는 큰 대문을, 해 지는 쪽에는 작은 대문을 두었다. 빙 둘러 높은 돌담도 쌓았다. 드넓은 대지와 산과 계곡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었다. 바람과 햇살과 구름도 이곳에서 쉬어가는 최고의 명당이었다. 교동리에 자리잡고 있어 교동집이라고도 불렀다. 500여 년 전, 이곳에 김(金)정승, 송(宋)정승, 민(閔)정승의 삼(三)정승이 살았다. 처음에는 김정승이 아흔아홉 칸의 한옥을 짓고 살았다. 이어 송정승과 민정승이 차례로 그 집에서 주인 노릇을 했는데 이들은 옥천에서 가장 잘나가던 부농이자 권력자였다. 그리고 1918년 어느 날, 인근 능월리의 대지주 육종관 씨가 교동집을 사들였다. 육영수 역사가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장계관광지에 세워진 시비와 정지용 시인의 생가

 

 인근에 정지용 시인의 생가가 있다. 아버지는 한약방을 운영했다. 중국과 만주를 오가며 어깨 너머로 한의학을 공부했고 좋은 약재를 고르는 법도 배웠다. 그래서 시골집에 한약방을 차려놓고 약재를 팔거나 아픈 사람 진맥을 보고 처방도 했다. 언제나 시골집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어디 아픈 사람만 찾아왔겠는가. 나라가 수상하니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들으러 오는 사람도 있었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어찌해야 할지 도원결의하는 다락방도 있었다.
 소년은 주경야독, 독학으로 휘문고보에 입학했다. 1학년 때 ‘요람’의 동인을 결성했다. 2학년 때 ‘서광’ 창간호에 소설 「3인」을 발표했다. 홍사용, 박종화, 김영랑, 이태준 등 내로라하는 작가들과 문학활동에 심취했다. 휘문고보를 졸업한 뒤 일본 교토의 도시샤대학 영문과에 입학했다. 그의 마음은 언제나 서정적이고 고향에 대한 아련함으로 가득했다. 박용철, 김영랑과 함께 ‘시문학’ 동인이 되어 아름다운 우리 글, 우리 시 짓기에 몰두했다. 우리 언어의 아름다움과 아련한 추억과 사랑을 시심에 담았다. 그가 바로 한국시단의 섬세한 언어의 시인 정지용이다.
 이 마을에 110년 역사의 죽향초등학교가 있다. 얼마나 많은 악동이 이곳을 거쳐 갔을까. 향수의 시인 정지용과 육영수 여사도 이 학교에서 놀았다. 정지용의 시처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이다. 흙에서 자랐으니 그 마음도 흙처럼 구순할 것이다. 파아란 하늘을 따라 뛰어놀던 그날의 추억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옥천 구읍은 옛날의 영화를 말하듯 일제강점기의 건물과 교회당, 개량 민가 등 근대건축물과 문화유산이 적지 않다. 고향의 내음 가득하다.
 이곳에서 향수길을 따라 장계관광지로 이동했다. 걸어도 되고, 자전거를 타고 가도 된다. 편리하게 이동하려면 택시나 승용차로 이동하면 10분 거리다. 장계관광지는 대청댐 건설로 이 일대에 대규모 호수가 만들어지면서 조성된 국민휴양지다. 대청댐은 1975년 3월에 공사를 착수해 5년 9개월의 공사 끝에 1980년에 완공했다. 대청댐으로 청주와 천안, 세종, 공주 등 충남·북, 그리고 전북 일부에까지 식수와 공업용수 등을 연간 1,300만t씩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됐다. 그렇지만 댐과 함께 삶의 터전이 물속에 잠기면서 고향을 떠나야 하는 수몰민들이 옛 청원군과 옥천군 등 4개 시군에 86개 마을 4,075세대에 걸쳐 2만6천 명의 수몰민이 생겼다. 그날의 상처와 그리움이 바람의 현을 타고 물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대청호가 한눈에 펼쳐져 있는 풍경속에 향수의 시비가 도열해 있다. 꽃들은 저마다의 빛으로 나그네의 옷고름을 붙잡는다. 푸른 숲 사이로 삶의 여백이 끼쳐온다. 민간 정원인 뿌리깊은 나무에서 풍경에 젖는다. 머잖아 수상택시를 타고 대청호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날이 오면 시인의 노래를 부르리라. 바람처럼 춤을 추리라. 
  사진 김영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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