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돈 교수의 치유 인문학] 타인을 용서하라 그리고 나 자신을 용서하라
[권희돈 교수의 치유 인문학] 타인을 용서하라 그리고 나 자신을 용서하라
  • 권희돈 교수
  • 승인 2022.05.02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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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돈 교수
권희돈 교수

인간이 가장 하기 어려운 일이 다섯 가지가 있다. 남의 말을 듣는 일, 미움을 사랑으로 바꾸는 일, 나의 잘못을 인정하는 일,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 남의 잘못을 용서하는 일이다. 이 다섯 가지 중에서도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 용서이다. 용서할 권리를 지녔으나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깊은 사랑이 아니면 행사할 수 없는 권리이기에 역설적이다. 용서, 세상에서 가장 역설적인 말이다. 그래서 용서는 인간의 몫이 아니라 신의 몫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태어났을 때는 자유다. 그러나 그 후 도처에서 쇠사슬로 묶여진다.(루소) 용서는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해서나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나 많을 것을 가르처 준다. 용서는 다시 한 번 진정한 자신이 될 수 있는 자유를 준다. 그리하여 모두가 관계를 새롭게 시작할 기회를 얻는다.(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인생수업)

혹자는 용서와 관련하여 두 개의 F를 기억하라고 강조한다. 용서하고(Forgive), 잊어라(Forget). 타자의 잘못을 용서한 다음 용서한 것조차 잊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실천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용서했다 싶었는데 다시 생각이 나서 자신을 괴롭힌다. 
성서에는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비유는 마치 암호처럼 기록되어 있다. 이 말의 표면적인 의미는 490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뜻이지만, 심층적인 의미는 지속성과 완전성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말이다. 490이라는 숫자는 한 번 더, 많이, 무진장, 끝까지 등으로 의미화 되는 지속성을 가리킨다. 숫자 7은 완전을 의미한다. 하느님을 상징하는 기호이며, 천지창조, 안식일, 안식년 등을 상징하는 기호이다. 그러므로 7번씩 70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은 온전히 마음의 평화를 얻을 때까지 반복적으로 용서하라는 의미이다. 하늘의 아버지도 좋아 할 완전한 용서의 메시지인 셈이다. 

 

얼마 전 남편을 저 제상에 떠나보낸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어둠이 시나브로 내려앉는 저녁, 카페 한 편 구석에서 할머니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펼쳐나갔다. 
남편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청천벽력 같은 일을 경험했답니다. 여기저기 노트가 발견되었는데 도처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여보, 미안해 내가 잘못 했어. 한 번만 용서해줘.”

세상을 떠났지만 마음 한 구석에 남편에 대한 미움은 가시지 않았었는데, 그 문구를 보는 순간 평생 동안 쌓였던 미움이 한 순간에 다 사라지는 거 있죠. 살아 있을 때 용서해 달라는 말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여기저기 써놓은 걸 보면 아마 용서해달라는 말이 자주 목에까지 올라왔는데 그때마다 도로 삼켜 버렸나봐요. 자존심이 무척 강했었거든요. 아무리 소중한 말도 밖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흙속의 진주나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하기사 저도 그 양반이 살아계실 때는 미움밖엔 없었답니다. 그이의 말 행동 숨 쉬는 것까지 미워했으니까요. 저의 마음은 그이를 받아들일 공간이 전혀 없었어요. 그이 탓만 할 일이 아니지요.

사람들은 왜 쓸데없는 자존심을 그렇게 내려놓지 못하는 것일까. 끝까지 버티면서 불행하게 사는 까닭이 무엇일까.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마음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단 한 번만 내려놓으면 그 몸속에 새로운 공기가 들어갈 텐데. 
그러면 분명히 새로운 관계를 맺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텐데. 

할아버지가 용서해달라는 속생각을 살아계실 때 표현했더라면 얼마나 행복하였을까. 그리고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받아들일 마음의 공간을 비워놓았더라면 노부부가 남은 여생을 얼마나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을까. 미움이 가득 찬 불행한 삶을 다 마치고서야 속생각이 밝혀지는 삶은 정말 쓸쓸한 삶이 아닐 수 없다. 두고두고 회한만 품고 사는 삶을 어느 순간 끊어내지 않으면 살아서 행복할 수 없다. 회한이 남는 삶을 살지 마세요. 할머니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온다.

알렉산더 포프는 사람은 잘못을 저지르고, 신은 용서한다고 하였다. 1%의 연민은 바로 사랑의 신이 용서하는 마음이다. 무한량의 물을 퍼 올릴 수 있는 한 바가지의 마중물과도 같다. ‘용서를 통해 우리가 얻는 가장 큰 유익은 바로, 이제 더 이상 과거에 희생되지 않는다고 우리 스스로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다는 점이다.’(프레드 러스킨, <용서>)  
 
정리하여 말하면, 용서하는 일에도 백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백신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연민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이다. 연민은 역지사지의 마음을 갖게 하고,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어준다.(時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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