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민 음악칼럼니스트] 사월의 노래
[이영민 음악칼럼니스트] 사월의 노래
  • 이영민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2.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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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S. 엘리엇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22년 그의 시 ‘황무지’를 통해 봄의 역설을 부르짖었다.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하며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이자 극작가인 그가 불과 20대 중반의 나이로 영국과 미국의 문학계에 일대변혁을 일으켰던 이 시는 세계사의 암울함과 엘리엇 자신의 개인사가 배경이 되어 고대 성배의 전설과 더불어 복잡하고 난해하게 전개된다. 

차라리 황량한 대지의 아픔을 흰 눈으로 덮어주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주던 지난 겨울이 오히려 따뜻했음을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첫구절의 한 행에 녹여내고 1부의 마지막 행을 중세유럽의 전설을 기반으로 한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대사 <황량하고 쓸쓸합니다. 바다는.> 으로 마무리한다.

아픔과 상처로 가득한 20세기 전반을 거칠게 지내온 우리에게도 봄은 마냥 활기차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으리라. 한국가곡사에 빼놓을 수 없는 ‘사월의 노래’는 6.25의 화약냄새가 채 가시기 전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시인 박목월(1916~1978)은 “이 노래를 작시할 때 6.25 전 이화여고 재직 시 후관 앞 목련꽃 나무 밑 잔디에서 책을 읽는 여학생들의 인상적인 모습과 그들의 정서, 그리고 지루했던 피난살이와 구질스런 생활에서 해방되어 여행을 훌쩍 떠나고 싶은 유혹을 연상했다.”고 회고했다. 애초에 노랫말을 염두에 두고 작사를 했기 때문에 운율과 각 연의 배치, 행의 종성처리, 후렴구 부분이 모두 정교하게 정리되어있다.

박목월 생가와 그의 동상
박목월 생가와 그의 동상

이 ‘사월의 노래’는 일제강점기시절에 만들어졌다 폐간된 월간지 학생계가 1953년 재창간되면서 작곡가 김순애(1920~2007)에게 가곡의 청탁을 해 세상에 빛을 보게 된다. 김순애는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작곡가로 ‘그대 있음에’ ‘네잎 클로버’등의 가곡과 더불어 오페라 ‘직녀, 직녀여!’를 작곡하며 한국가곡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녀는 전쟁중에 남편을 잃고 세 딸과 함께 피난을 다녀온 후 모든 세간을 도둑맞은 자신의 빈 집으로 돌아와 이 시에 멜로디를 붙여나갔다. 비극의 끝자락에서 자신의 마음속에 희망의 봄을 간절히 바라는 애틋함이 노랫말과 음악을 통해 절절히 전해지고 있다. 30여 마디의 짧은 가곡이지만 전반부의 서정적 가락과 그에 대비되는 후반부의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의 가사부분에서는 강렬한 클라이막스를 만들어내며 듣는이로 하여금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절정의 순간을 만들어낸다.

문학계와 음악계의 두 거목이 시대의 아픔을 가슴 한 켠에 품고 이런 수작을 만들어낸 데에는 한국가곡의 발전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일본이나 중국에서 볼 수 없었던 예술가곡의 전성기를 만들어낸 우리예술인들의 진지한 도전이 부단히 있었고 민중에게는 시와 노래로 삶의 고단함을 달래는 수준 높은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대중문화 한류현상과도 깊은 뿌리를 공유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지금은 아쉽게도 그 관심이 많이 사라진 한국예술가곡이 다시금 재조명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T. S. 엘리엇의 ‘황무지’ 이후 100년. 우리의 사월 또한 쉽게 잊을 수 없는 잔인한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다. 4.3과 4.19가 그랬고 세월호의 아픔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가슴깊이 박혀있는 먹먹함을 놓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봄은 여전히 부활과 재생의 상징이고 ‘사월의 노래’는 빛나는 꿈의 계절과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을 되돌아보며 절망이 아닌 희망으로의 여행을 떠날 용기를 우리에게 선물한다. 우리 가곡 ‘사월의 노래’와 더불어 이탈리아의 가곡부흥을 이끈 작곡가 토스티의 ‘사월(Aprile)을 이달의 감상곡으로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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