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테마기행] 충북의 숲과 나무·진천Ⅱ
[장태동의 테마기행] 충북의 숲과 나무·진천Ⅱ
  •  글·사진 장태동
  • 승인 2022.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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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 한 옛날에~~ 나무가 들려주는 옛날 얘기
봉화산 꼭대기 느티나무 고목. 산 아래 진천 읍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봉화산 꼭대기 느티나무 고목. 산 아래 진천 읍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잣고개에서 봉화산 꼭대기로 올라간 이유는 그곳에서 170년 동안 진천읍의 너른 들판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굽어보고 있는 느티나무를 보기 위해서였다. 오래된 나무는 옛날얘기의 증거다. 장척마을 260년 넘은 향나무는 장자울의 옛 이야기를 후세에 전하기 위해 지금도 푸르다. 덕산읍 꿈마을 은행나무, 초평면 용기리 느티나무와 버드나무 고목도 새봄을 맞이하려 안간힘으로 땅속 저 아래부터 물을 긷는다. 

봉화산 꼭대기 느티나무 고목을 보다
충북 진천군 진천읍 문안산과 봉화산 사이 고개 이름이 잣고개다. 진천군청 자료에 따르면 조선시대 사람 김기경이 지은 시에 ‘옛 성곽은 황량한데 석양만이 서리네’라는 표현이 나온다. 시에 나온 옛 성곽은 삼국시대에 문안산에 쌓았다고 하는 문안산성으로 추정한다. 문안산 동쪽 봉화산은 조선시대에 봉수대가 있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원래 이름은 소나무가 많아서 이름 붙은 솔산이었다. 400m가 조금 넘는 두 산 사이에 난 길이 잣고개다. 고갯마루 높이가 거의 200m 정도 된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산성과 봉수대가 있었으니, 이곳이 전략적 요충지임에 틀림없다. 한국전쟁 때 국군 수도사단과 2사단, 독립17연대가 북한군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기도 하다. 잣고개 산림욕장 입구에 이를 기리는 6.25격전지비가 세워졌다. 비석을 뒤로하고 잔설 남은 잣고개 산림욕장으로 들어갔다. 
봉화산 정상까지 600m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나 조금 더 가면 숲속 오솔길이 시작된다. 산비탈에 나무들이 촘촘하다. 갈지(之)자로 이어지는 오솔길이 빗살 같이 박힌 나무 사이로 났다. 정자 앞 봉화산 0.2㎞를 알리는 이정표가 가리키는 쪽으로 걷는다. 숲은 나무의 줄기와 가지만으로도 빽빽하다. 돌무지를 지나면 나뭇가지 사이로 꼭대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한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시야가 더 넓게 트인다. 이내 하늘이 열린다. 꼭대기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굽어본다. 170년 정도 된 느티나무다. 한국전쟁 때 난 총알 자국이 있다고 하는데, 찾지 못했다. 
편평한 산꼭대기 마당 한쪽 끝 느티나무 고목 옆에 선다. 진천 읍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오랜 세월 느티나무 고목은 그렇게 말없이 진천의 너른 들녘과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을 굽어보고 있었다.

우물을 품고 있는 장자울 향나무

260년 넘게 살고 있는 향나무와 우물이 있는 곳은 장자(長者·학문과 덕망이 높은 사람) 설화가 전해지는 진천읍 산척리 장척마을이다. 
아주 오랜 옛날 마을에 장자(長者)가 살았다고 해서 장자울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마을 유래비에 따르면 당시 마을이 가난해서 이웃 마을에서 양식을 빌어먹기도 했는데, 형편이 좀 나아져 죽이라도 쒀 먹을 정도가 되고부터는 ‘죽장자울’이라는 별칭도 생겨났다. 훗날 잘 사는 마을이 되어 곡식으로 떡도 해먹게 되자 ‘떡장자울’이란 이름이 붙었다. 지금의 마을 이름인 ‘장척’은 뒷산 능선이 자(尺)의 눈금을 닮았다고 해서 생긴 것이다. 
260년 넘은 향나무와 우물은 장척마을회관 앞에 있다. 향나무 생김새가 예사롭지 않다. 언뜻 보기에는 그저 높게 자라지 않고 넓게 퍼져 자라는 모양이다. 하지만 가까이서 나뭇가지 안을 들여다보면 신비하기까지 하다. 줄기가 땅에 닿아 새 뿌리를 내린 듯 땅과 하나 되었다가 다시 고개를 치켜들고 위로 자란다. 그런 줄기가 여러 개다. 그 줄기들에서 뻗은 가지들이 푸른 나무의 품안 공중에서 용틀임을 하다가 똬리를 틀기도 하고 매듭처럼 얽히기도 하며 자란다. 그렇게 자란 나무는 그 품에 우물을 품었다. 
우연히 만난 마을 아저씨와 아줌마께 향나무를 보러왔다는 말로 인사를 건넸다. 두 분의 첫 마디는 ‘향나무 보기 좋지요?’였다. 그러고 아저씨 어릴 적에 마을 어른들이 해주셨던 얘기라며 옛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러니까 100년도 넘은 이야기다. 당시에도 향나무는 지금의 모양과 크기였다. 향나무가 품은 우물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았다. 가뭄이 길어지면 인근 마을에서도 물을 길러왔다.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샘물, 그 샘을 품은 푸른 기상 향나무가 장자울 마을 옛날얘기를 후세에 전하고 있다. 
     
꿈마을 은행나무와 용기리 고목들
마을 이름이 꿈마을이다. 진천군 덕산읍 용몽리 몽촌마을. 진천군청 자료에 따르며 조선시대 사람 채진형이 지금의 진천군 덕산읍 처가에 머물 때 꿈에서 본 풍경을 찾아다니다 지금의 몽촌마을에 이르러 걸음을 멈췄다. 꿈에서 본 풍경이었다. 그는 이곳에 정착하여 마을을 일궜다. 꿈에서 본 마을이라고 해서 꿈마을이라고 했다. 
진천에서 덕산으로 가는 길, 초금로에서 몽촌1길로 접어들어 조금만 가다보면 길 왼쪽 마을 어귀에 채진형이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자라고 있다.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에는 버드나무와 느티나무 고목이 남아있다. 300년 넘게 살고 있는 용기리 느티나무 옆에 조선시대 효부로 알려진 정선 전씨의 효부문이 있다. 그 옛날에 겨울에 오이를 구하고 여름에 얼음을 구해 부모님을 극진히 모셨으며, 치성으로 산삼을 캐서 부모를 봉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용기리 버드나무는 평범한 시골마을 작은 들녘에서 200년 넘게 자라고 있다. 짧고 굵은 줄기에 크고 작은 옹이가 세월의 더께처럼 굳었다. 그 옛날 농투사니 팍팍한 생이 저랬을까? 버드나무 고목이 땅속 깊은 곳까지 뿌리를 뻗어 안간힘으로 물을 길어올리는 이유는 새봄에 피워낼 푸르른 새잎을 위해서다. 해거름 황금빛 햇살이 버드나무를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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