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민의 보들보들 클래식]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 Chaconne (샤콘느)
[이영민의 보들보들 클래식]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 Chaconne (샤콘느)
  • 이영민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2.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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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대 초반 즈음 음반상점을 돌아보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이라는 부제가 달린 CD표지를 보고 손이 갈 수 밖에 없었던 앨범이 있었다. 바로  한국의 대표 바이올리니스트인 사라 장의 연주곡들을 모아 발매한 ‘Sweet Sorrow’라는 타이틀의 음반이다. 연주는 당연히 매우 훌륭하거니와 함께 커플링되어있는 음악들도 모두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명곡들로 가득 차 있는 앨범으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이라는 부제는 음반사의 판매고를 올리기 위한 상업카피여서 약간의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문구 자체가 꽤나 자극적이었기 때문에 앨범을 집어들고 한참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만들게 되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의 음악은 바로크시대의 이탈리아 작곡가 토마소 비탈리 (Tomaso Antonio Vitali 1663~1745)가 남긴 샤콘느(Chaconne), 태생 자체부터 미스테리에 싸여있는 작품이다. 비탈리 사후 100여년이 지났을 무렵 독일의 바이올리니스트 페르디난트 다비드(Ferdinand David)가 작센 주립 도서관에서 찾아내었는데 원본은 멜로디와 베이스라인만 간략히 그려져 있는 상태여서 다비드가 피아노와 바이올린으로 연주할 수 있도록 편곡해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원본을 살펴보면 제목도 적혀있지 않고 다만 ‘토마소 비탈리의 파트’라고만 적혀있기 때문에 이것이 비탈리의 원곡인지 아니면 다른 작곡가의 작품을 비탈리가 단지 연주만 하였는지조차 정확히 알 길이 없다. 이 다비드의 편곡을 레오폴트 샤를리에(Leopold Charlier)가 수정한 버전이 지금의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고 오토리노 레스피기(Ottorino Respighi)도 오케스트라와 협주버전을 따로 남기고 있다.

 

사실 모차르트 이전의 작곡가들에게 저작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희미했고 남의 이름을 빌어 작품을 내보이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위와 같은 우여곡절을 가지고 있는 작품들이 다수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중요한 점은 이 곡이 몇 백년간 많은 음악가들의 창작열에 불을 지폈고 수많은 청자들에게 깊은 감동으로 다가갔다는 사실이다. 이 보석과 같은 아름다운 음악이 20세기에 들어와서 하이페츠(Jascha Heifetz)의 녹음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레퍼토리로 자리잡게 되었다. 300년 전의 작곡가, 지금의 대중의 눈에서 보자면 무명의 작곡가라 할 수 있는 그가 남겨놓은 악보의 일부분이 세상에 나와 여러 변형의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토마소 비탈리의 이름으로 세계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면 작곡가 본인도 어지간히 놀라지 않을까?

샤콘느(Chaconne)라는 장르는 16세기 스페인에서 유래한 춤곡의 하나로 시작되었다. 느릿한 3박자의 이 춤곡은 폴리아(Folia)나 사라방드(Sarabande)와 유사한 리듬진행을 가지고 있는데 샤콘느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엄격한 화성반복에 의한 변주곡의 틀을 유지하며 곡을 완성해가는 일이 무척 난해한 작업이다. 그래서인지 이 장르가 나타난 르네상스 시대로부터 얼마 전 타계한 펜데레츠키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곡가들이 샤콘느에 도전해 작품들을 남기고 있다. 비탈리의 그것과 더불어 대표적인 샤콘느를 꼽자면 바흐의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샤콘느와 브람스의 교향곡 4번의 마지막악장이 널리 연주되는 수작으로 남아있다.
 
비탈리의 샤콘느가 주고있는 비장미가 워낙 강렬해서 슬픈 악곡의 대명사처럼 인식이 되는 경향이 있기도 하고 느린 3박자의 춤곡리듬을 단조의 엄격한 변주곡으로 써내려가다 보면 자연스레 비가적인 느낌의 종착역으로 흘러들어가 버리기 쉬울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긴 하나  이 곡명은 악곡의 한 형태일 뿐이기 때문에 밝고 경쾌한 샤콘느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예술작품으로부터 어떤 특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일은 자연스럽고 흔한 일이지만 감상의 가이드라인을 극단으로 몰아가는 것은 자칫 감상자의 영역을 좁은 고정관념 속에 가둬놓을 수도 있으므로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이 작품이 눈물샘을 자극하는 극적이고 애절한 음악인 것은 사실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이라는 카피에서 불편함을 느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현재 인류에게는 70억 가지의 가장 슬픈 음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20여년의 나이 차이를 두고 3월에 탄생한 바로크의 두 대가 비탈리와 바흐의 샤콘느를 모아 이 달의 감상곡으로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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