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테마기행] 충북의 숲과 나무·진천Ⅰ
[장태동의 테마기행] 충북의 숲과 나무·진천Ⅰ
  • 장태동
  • 승인 2022.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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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에서 풍기는 성정, 나무의 마음을 읽다

진천의 고목들은 살아온 세월만큼 거대하거나 기이하지 않다. 하지만 세월에 비해 작은 몸집에 응축된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 진천군 문백면 태락리 700년 느티나무는 수더분한 마을 할아버지 같다. 진천군 진천읍 문봉리 600년 느티나무는 아담하면서도 숭고하고 순수하다. 석현리 800년 느티나무는 그 위용이 당당하다. 나무마다 깃든 이야기도 그렇다. 

 

장돌뱅이 쉬어가던 700년 느티나무  
700년 가까이 살고 있는 느티나무가 있는 곳은 진천군 문백면 태락리 태랑 경로당 앞이다. 고려시대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느티나무의 관록에 비하면 크기나 모습이 평범하다. 나무 옆 지붕 낮은 집 흙돌담과 그저 수더분하게 어울렸다. 
진천군 자료에 따르면 이 나무 부근에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공무를 보던 사람들이 묵던 원이 있었다. 주변에는 역도 있었다고 하니, 사람들 발길이 잦았겠다. 산천유람 하는 양반들, 과거에 나선 선비들, 팍팍한 다리로 장터를 떠도는 장돌뱅이들이 쉬어가던 주막도 있었다고 한다. 
충북 청주시에서 17번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가다보면 오창을 지나 진천군 문백면이 나온다. 문백면 태락리를 지나는 도로(문진로)를 가운데 두고 동쪽과 서쪽에 있던 자연마을이 다랭이 마을과 역리 마을이다. 다랭이 마을에는 원이 있었고 역리 마을에는 역이 있었다. 700년 느티나무가 있는 곳은 다랭이 마을이다.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 안동김씨 사충문 옆에는 200년 넘은 느티나무가 세 그루 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나무를 서낭나무로 여기고 기원제를 올린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에 그곳에 샘이 있었고, 샘 주변에 느티나무 7그루가 샘을 호위하듯 서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나머지 나무들과 샘은 볼 수 없다. 
진천군 진천읍 문봉리에는 600년 가까이 된 느티나무가 있다. 600살 나무는 거대하거나 기괴하게 생겨 사람에게 위압을 주는 게 아니라 단아하다. 언덕 위에 우뚝 섰지만 기세를 내세우지 않는다. 나무에서 비치는 성정이 더할 수 없이 높으나 순수하다. 예로부터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에 잎이 돋아나는 걸 보고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쳤다고 한다. 나무 전체에 고루 잎이 돋아나면 풍년이 들고 어느 한 곳에서 먼저 잎이 많이 피어나면 흉년이 든다고 여겼다.

 

800년 느티나무가 있는 풍경
집채보다 큰 바위를 쪼개고 지상으로 드러난 힘의 원천, 거대한 뿌리를 보았다. 꿈틀거리는 뿌리는 사방으로 퍼져 바위를 움켜쥐었다. 용틀임하던 뿌리는 땅을 파고 들어가 바위의 뿌리까지 뻗었을 것이다. 지상의 굵은 줄기와 공중으로 퍼져나간 가지들과 가지마다 맺힌 무성한 잎들을 생각하며, 거센 폭풍우 눈보라마저 잠재울 것 같은 그 기상 앞에 섰다. 거대한 바위 위에서 자란 더 거대한 느티나무 한 그루, 800년을 살아온 그 푸르른 기개가 그곳에 우뚝 솟았다. 
진천군 백곡면 석현리 지사곡마을, 고려 후기 북으로는 홍건적을 물리치고 남으로는 왜구를 물리쳤던 용장 김사혁이 터를 잡으며 이룬 마을이다. 그는 이곳에 그의 호와 같은 ‘절정’이라는 정자를 지었지만 지금은 그 터만 남았다. 인걸은 사라지고 그가 세운 건물도 사라졌지만, 마을을 거닐고, 사람들과 웃음을 나누며 이야기하던 그를 보았을 800년 넘은 느티나무만 남아 옛 이야기를 들려준다. 
진천군 백곡면 용덕리 300년 넘은 느티나무에는 참빗귀신 전설이 내려온다. 옛날에 참빗장사가 이 나무 아래에서 객사했는데, 그 이후로 나무에서 참빗귀신이 나온다는 이야기다.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에는 농사와 관련된 전설이 깃든 300년 넘은 느티나무가 있다. 봄에 나무 윗부분에서 잎이 먼저 나면 천수답에 모를 먼저 심어야 하고, 아랫부분에서 잎이 먼저 나면 물 걱정 없는 논에 모를 먼저 심어야 풍년이 든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왜가리 번식지 은행나무 고목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 왜가리 번식지를 찾았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탄금대 전투에서 전사한 신립 장군의 형이자, 임진왜란 때 비변사에서 일했으며, 병조판서를 역임하고 훗날 영의정으로 추증된 신잡을 모신 노은영당 옆에 왜가리 번식지가 있었다. 
1962년에 왜가리 번식지로 지정된 그곳엔 거대한 은행나무 고목만 남아있다. 안내판 내용에 은행나무가 1000년 정도 됐다고 하고, 누구는 그보다는 덜 됐다고 한다. 보호수로 지정되지 않았고 나무의 수령을 측정하지 않았으니 얼마나 오래된 나무인지 알 수 없다. 왜가리들이 살던 은행나무는 왜가리들의 배설물 때문에 나무 윗부분이 말라 죽었다. 왜가리 철이 되면 수백 마리가 날아와 살았다. 왜가리들은 이 나무를 떠나 인근 숲으로 둥지를 옮겼다고 한다. 오랜 세월 왜가리들의 둥지가 돼준 은행나무 고목이 을씨년스럽다. 발길은 진천군 이월면 송림리 ‘생거진천 치유의 숲’으로 향했다. 겨울이라 치유의 숲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쉰다. 산책로 4개 코스는 걸을 수 있다. 물소리 맑음 숲길이라는 이름의 1코스는 0.7㎞다. 2코스 마음 치유 숲길은 1.2㎞, 3코스 숲 내음 숲길은 1.5㎞, 4코스 하늘 맑음 숲길은 2.8㎞다. 
산책로 숲길도 좋지만 한옥 건물 앞에서 보는 풍경만으로도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계곡 물길과 잔디밭, 숲과 이어지는 산책로, 숲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해거름이라 멀리 가진 못했지만 눈 쌓인 겨울 숲, 숲을 흔들고 지나가는 칼바람에 알싸한 겨울 숲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글·사진 장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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