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큐레이터 변광섭의 마을이야기22] - 충주 영죽리 음촌마을
[로컬 큐레이터 변광섭의 마을이야기22] - 충주 영죽리 음촌마을
  • 글=변광섭, 사진=김영창
  • 승인 2022.03.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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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함께 떠난 음촌마을 풍류와 풍경
선재마을의 오송대
선재마을의 오송대

이른 아침 노크 소리에 놀라 창문을 열었다. 봄이었다. 남녘에서 머물던 봄이 허겁지겁 달려와 잠자던 나를 깨웠다. 어제는 새싹들이 여릿여릿 머리를 내밀더니 오늘은 봄바람이 허기진 내 가슴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봄이 왔다고, 봄이 왔으니 어서 일어나 소풍 가자며 귓속말을 한다.

언제나 그랬다. 땅은 지층의 역사로, 나무는 나무껍질 속 나이테로, 사람은 눈가의 주름의 깊이와 개수로 삶을 증명한다. 봄을 느끼려면 봄이 오는 풍경 속에서 더 깊이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가까이서 보아야 그 내밀함을 느낄 수 있고, 더 오래 보아야 내 가슴에 새길 수 있다.

사람들이 봄꽃에 더 열광하는 이유는 기다림이 길고 간절했기 때문이다. 찰나의 아름다움은 치명적이다. 기다림이 깊은 만큼 만남은 더욱 소중하다. 봄이 오는 소리로 가득하니 그토록 간절히 소망했던 소풍 가야겠다. 사랑하는 내 님과 손잡고 봄봄봄 노래를 부르며 봄 마중을 떠나야겠다.

여기는 충주시 앙성면 영죽리 음촌마을이다. 남한강변 인근에 자리잡은 영죽리는 상영죽, 양촌, 후곡, 음촌 등 4개의 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농경문화와 생태문화가 조화를 이루면서 수백 년 이어져 오고 있는 마을이다. 음촌마을에도 독립된 마을 공동체가 있다. 그 이름은 바로 ‘선재마을’이 있다. 고택과 문화가 있는 풍경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음촌마을 내 한옥스테이 공간인 선재마을
음촌마을 내 한옥스테이 공간인 선재마을

선재마을은 월인재, 마음밭, 동천초당, 소소재, 오송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월인재(月印齋)는 너와 지붕의 정취가 달빛과 어울리는 자연 친화적인 집으로 그 역사만도 120년이 넘는다. 고향집 담장을 연상케 하는 월인재의 돌담은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원형이 보존되어 있다.

마음밭은 말 그대로 마음을 수련하는 곳이다.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공간이자 공연과 전시 등 다채로운 문화예술을 나누는 곳이다. 동천초당(洞天草堂)은 마음과 마음이 공감되는 진심을 나누기 위해 2013년 연못 위에 지어진 차실이다. 이곳에서 맑은 차 한 잔을 마시며 평화롭고 고요한 마음을 나누면 좋겠다.

소소재(笑素齋)는 소박하고 즐거운 채식공간이다. 50여 년 된 흙집을 수리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선재의 밥상을 즐길 수 있다. 선재의 밥상은 친환경으로 재배된 재료와 채식 중심의 식단으로 꾸몄다. 오송대(五松臺)는 소나무가 있는 작은 마당이다. 이곳에서 선재음악회를 연다.

선재마을에서는 매년 크고 작은 문화행사가 열린다. 사람과 예술, 자연이 하나되는 곳이다. 2020년과 2021년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대한민국공연예술제로 선정되기도 했다. 매년 전통과 현대음악이 조화를 이루는 선재음악회를 여는데 ‘풍류, 마음에 스며들다’, ‘강이 깊어 물은 고요하네’, ‘한 포기 풀속에도 마음이 있네’ 등 매회 시적 스토리가 있는 테마로 잔잔한 예술의 물결을 일으킨다.

음촌마을 돌담길
음촌마을 돌담길

얼마 전 방송에서 나영석·김세희 연출의 교양프로그램 ‘윤스테이’가 방영되면서 한옥체험이 인기를 끌고 있다.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과 배우 이서진 등이 출연한 윤스테이는 깊은 세월과 자연이 어우러진 한옥에서 정갈한 한식을 맛보고, 다채로운 즐거움을 누리며, 고택의 낭만을 느끼면서 오롯한 쉼을 전달하는 한옥 체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었다.

이후 전국적으로 한옥스테이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 선재마을도 그중의 하나다. 단순한 한옥체험이 아니라 문화예술과 치유가 있는 체류형 체험의 장이다. 코로나19 이후에는 더욱 주목받고 있지 않던가. 그러니 음촌마을의 한옥스테이 공간이 선재마을처럼 고향의 빛바랜 풍경을 잘 다듬어 체류형, 치유형, 체험형 문화공간으로 가꾸면 좋겠다. 역사도 지키고, 마을도 살리며, 문화로 풍유로운 농촌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하자.

인근에 비내섬이 있다. 이곳은 한국관광공사로부터 지난해 비대면안심관광지로 선정되었고, 행정안전부로부터 우리마을 녹색길 베스트 10에 선정되었다. 한강 36경 중 제7경이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촬영지로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조그만 다리를 건너면 비내섬이다. 봄날의 햇살과 봄바람에 억새가 하얀 거품을 뿜어내며 춤을 춘다.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억겁의 신비가 있다. 99만㎡ 규모의 섬은 인공의 때가 묻지 않은 원시림이다. 갈대와 억새, 그리고 그 사이로 난 작은 길과 강을 배경으로 도열해 있는 버드나무가 전부다. 왜 비내섬인가. 갈대와 나무가 무성해 비어(베어)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 사람도 있고, 큰 장마가 지는 바람에 내가 변했다 해서 ‘비내’라 부른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봄봄봄, 봄이 오는 소리를 따라 봄나들이 떠나자.

변광섭
변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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