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돈 교수의 치유의 인문학] 인생에 해답은 있다
[권희돈 교수의 치유의 인문학] 인생에 해답은 있다
  • 권희돈교수
  • 승인 2020.08.11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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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의 특징은 일하기 싫으니까 충격적인 과거 때문이라고 핑계를 댄다. 요즘 우리나라에도 방에 콕 박혀 지내는 사람이 많이 생겼다. 그 이유를 물어보면 사람마다 핑곗거리가 다양하다. 그 핑계들은 모두 충격적인 과거와 관련이 있다.

충격적인 경험을 진행형으로 만드느냐 완료형으로 만드느냐에 따라 삶이 천양지차로 달라진다. 진행형으로 만들면 과거의 노예로 살게 되고, 완료형으로 만들면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게 된다.

연산군은(조선조 10대 왕)은 아버지 성종의 장례식 날 자신이 폐비 윤씨의 소생임을 알게 되자 곧바로 어머니의 복권작업에 들어간다.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이 펼쳐진다. 어머니가 폐비가 될 때 관여한 신하들을 극악한 방법으로 죽였다. 그로 인해 스스로의 성격이 파탄나고 주색에 빠져 조정의 정사는 흥청망청이었다. 그렇게 과거진행형으로 살다가 결국 왕의 자리에서 쫓겨났다.

반면, 정조(조선조 22대 왕)는 과거완료형으로 살면서 모든 것을 얻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사도세자)가 굶어죽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지만, 왕권을 차지한 후 연산군처럼 복수심으로 살지 않고, 지금 여기의 현실정치에 올인하였다. 신하들과 유교경전을 토론하며 집필에 충실하였다. 문화정책을 수립하여 조선 후기 문예부흥기를 펼치고, 탕평책 등 온갖 개혁과제를 완수하였다.

이처럼 출생, 성별, 외모, 재능, 지능, 재산, 사건 등 부모의 영역에서 이미 결정되어버린 것은 돌이킬 수 없다. 현재 해야 할 일은 버려둔 채, 억울하다고 과거에만 집착하면 그로 인한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이게 된다.

가수 인순이는 충격적인 과거를 잘 극복하여 우리나라 대표가수로 우뚝 솟아올랐다. 자신과어머니를 두고 미국으로 떠버린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얼마나 컸을까.

그녀가 나가수에 나와서 노래를 부르기 전에 했던 멘트는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아버지를 미워한 자신을 용서하고서야 이 자리에 나올 용기를 가졌다며, 그녀가 아버지를 목 놓아 부를 때 관객도 울고 시청자도 울었다.

가수 인순이는 아버지를 용서했기에 현재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오히려 혼신을 다하여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감사의 조건을 찾아내었다. 이런 마음가짐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합니다이다. 그러니까 이 마음가짐은 절망 속에 숨어 있는 성스러운 에너지인 셈이다.

이러한 반전스토리는 인순이 이야기 속에만 숨어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숨어 있다. 누구든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을 맞이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그 순간부터 인생 역전드라마가 시작된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하며 산다. 내가 경험해온 모든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이다. 실수에 집착하면 할수록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잘하는가 싶으면 실수도 하고, 행복하다 싶으면 돌연 슬픔이 찾아오는 게 인생사이다.

 

행복이나 슬픔이//그대를 덮쳐도//그저 나아갈 뿐//흔들리거나 집착하지 말아라.

 

<붓다가 되라>는 부처님의 말씀인데 생각할수록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모두 행복은 자주 오고 슬픔은 오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행복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 슬픔은 황혼의 그림자처럼 길다. 꽃이 피면 기뻐하고 저버리면 아쉬워하듯이, 행복과 슬픔에 집착하고 흔들리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진리의 말씀을 전한다. 행복이나 슬픔에 흔들리는 것은 집착이니, 행복이 넘쳐나도 슬픔이 덮쳐도 집착하지 말고 그냥 앞으로 나아가면 부처가 된다는 뜻이겠다.

엄밀하게 따져보면 행복도 슬픔도 이미 경험한 과거이다. 그 과거를 진행형으로 만들지 말고 완료형으로 만들라는 뜻이겠다. 행복이나 슬픔에 집착하고 흔들리는 순간은 과거에 얽매이는 일이요,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지금 여기를 놓치는 삶인 것이다.

가령 어떤 회사원인 남편이 출근하기 전에 집안에서 기쁜 일이 있었다고 하자. 그럴지라도 그는 평정심을 찾아서 회사에 출근하라고 일러준다. 그러다가 어떤 날에는 출근하기 전에 아내가 바가지를 심하게 긁었다면, 그럴 때에도 그는 회사에 들어가기 전에 평정심을 회복하고 출근하라고 일러주는 것이다.

회사에 출근하면 가정은 이미 과거의 땅이요, 퇴근해서 가정에 들어오면 회사는 이미 과거의 땅이다. 그러니 회사의 일을 가정까지 가지고 오지 말 것이며, 가정의 일을 회사까지 가져가지 말 것이다.

 

파란만장 우여곡절로 점철되는 것이 인생이다. 가다가 길을 잃을 때 꼭 이 한 마디 기억하자. “과거진행형으로 살지 말고, 과거완료형으로 살아라.”(時雨)

 

 


권희돈 교수는 청주대 명예교수, 문학테라피스트. 대학에서 은퇴하기 전에는 교사로 교수로 초등학생·중학생·고등학생·대학생을 차례로 가르쳐 왔다. 대학에서 은퇴한 후에는 문학테라피스트로 마음이 아픈 이들과 인문학을 통해서 치유하고 소통한다. 이들이 상처를 훌훌 털고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낼 때마다, 보람찬 노년을 보내고 있다는 긍지를 갖는다고 한다. 이에 관한 그의 저술 『사람을 배우다』는 장안의 화제작으로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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