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돈 교수의 치유의 인문학] 싫어요 난 못해요
[권희돈 교수의 치유의 인문학] 싫어요 난 못해요
  • 권희돈 교수
  • 승인 2020.06.08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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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감정은 고려치 말고 거절하라. 거절당한 사람의 감정은 그 사람이 처리해야 할 문제이지 거절한 사람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 거절하지 못해 남의 짐 짊어지고 끙끙거리지 말라. 나쁜 사람으로 편하게 사는 게 중요하지, 착한 사람으로 무겁게 살지 말라.

이영숙 씨는 아주 착한 시인이다. 얼마 전에 내가 관여하고 있는 커뮤니티에 한 학기만 나와달라고 부탁하였다. 당연히 라고 답할 줄 알았다. 지금까지 그녀는 누가 부탁하면 한 번도 아니오라고 대답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나의 부탁을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무슨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거절하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얼마 후에 그녀가 한 권의 시집을 들고 나타났다. 시집의 중간쯤에 박힌 사자는 절대로 짐을 지지 않는다는 시를 보면서 그녀가 왜 나의 청을 거절했는지를 알았다.

 

낙타는 제 어미의 어미처럼

짐꾼 앞에 무릎 꿇고 등을 주지만

 

사자는 제 어미의 어미처럼

그 누구에게도 몸을 굽히지 않는다

 

채찍을 기억하는 낙타는

채찍 안에서 자유를 찾지만

 

정글을 기억하는 사자는

자신에게서 자유를 찾는다

 

낙타는 짐꾼을 기억하며 무릎을 꿇고

사자는 초원을 기억하며 무릎을 세운다

 

사자는 절대로 짐을 지지 않는다

 

이 시에는 채찍 안에서 자유를 찾지 않고 자신에게서 자유를 찾는 삶을 살겠다는 선언적인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상적인 자아를 찾은 듯한 자존감이 넘치는 선언이었다. 시집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이영숙 시인의 내면세계가 이 시집에 와서 새롭게 변화한다는 사실을 실감하였다. 그녀의 변화된 내면세계는 단 두 문장으로 요약되었다. 거절할 줄 모르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벗어나자. 거절할 줄 아는 자기주도적인 사람으로 살아가자.

 

춤춰라,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알프레드 디 수자의 시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의 전문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자기주도적인 삶인지를 감동적인 은유로 담아낸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삶, 과거의 경험이나 기억에 억매이지 않는 삶, 돈을 벌기 위한 일이 아닌 일 자체가 즐거운 삶, 내일을 염려하지 않고 오늘에 충실한 삶을 사는 사람이 곧 자기주도적인 사람(self-initiated)인 셈이다.

아무리 호사스럽고 풍요로운 삶도 타인에게 예속된 삶은 삶다운 삶이 아니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삶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자기주도적인 사람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다. 자존감이 높아지면 거절할 줄 안다. 사랑받기보다 사랑할 때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한다. 낯선 삶보다는 낯익은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그런 습관적인 삶을 사는 한 발전은 없다. 누구든지 발전하려면 당당히 거절하는 삶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거절하는 삶의 꼭지점은 행복과 자유일 것이다. 행복도 자유도 거절로부터 온다. 행복과 자유가 거절로부터 오듯이 거절하는 삶이라야 자신이 주인이 되는 삶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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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멀리서 오신 손님을 모시고 어느 음식점엘 들른 적이 있다. 종업원이 우리 일행을 구석진 자리로 안내한다.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비어 있는 자리로 가겠다고 하니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옮겨준다. 막상 그 자리에 앉아보니 그곳은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구들장이 꺼지고 바람이 들어와서 잠시도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마침 편안한 자리의 손님들이 식사를 마치고 나갔다. 그 자리로 가겠다고 하니 종업원은 금방이라도 분노가 터질 것 같았다. 우리가 다 치울 터이니 그 자리에 가게 해달라고 사정하고 그 자리에 겨우 앉을 수 있었다. 그날 우리는 행복한 식사시간을 가졌다.

 

세상에는 거절하려는 사람거절하지 않으려는 사람’, 그리고 거절할 수 없다는 사람이렇게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다. 거절하려는 사람만이 자신이 바라는 모든 것을 성취한다. 자아존중감(자존감)이 높기 때문이다. 자아존중감이 높으면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게 된다. 타인의 눈 속에 갇혀 살지 않으며, 도덕이나 이론의 지배도 받지 않는다. 시간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난다. 과거를 완료형으로 만들고, 미래를 앞당겨 걱정하지 않는다.(時雨)

 

 


권희돈 교수는 청주대 명예교수, 문학테라피스트. 대학에서 은퇴하기 전에는 교사로 교수로 초등학생·중학생·고등학생·대학생을 차례로 가르쳐 왔다. 대학에서 은퇴한 후에는 문학테라피스트로 마음이 아픈 이들과 인문학을 통해서 치유하고 소통한다. 이들이 상처를 훌훌 털고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낼 때마다, 보람찬 노년을 보내고 있다는 긍지를 갖는다고 한다. 이에 관한 그의 저술 『사람을 배우다』는 장안의 화제작으로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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