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다락방 그리고 이상조
음악, 다락방 그리고 이상조
  • 이주현 기자
  • 승인 2018.11.23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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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엔 은행원, 주말엔 뮤직 스토리텔러
평일엔 은행원, 이후 개인적인 시간엔 뮤직 스토리텔러로 활동 중인 이상조 씨. 해박한 음악적 지식과 매끄러운 행사 진행으로 청주에서는 이미 유명하다. / 사진=이상조 씨 페이스북.

이상조 씨의 개인 공간인 ‘다락방의 불빛’에 가면 커피 한 잔이 간절하다. 아니, 이런 분위기를 두고 커피 한 잔 여유를 즐기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조명 불빛과 한쪽 벽면에 빼곡하게 꽂혀 있는 7000여 장의 오래된 LP판, 그리고 무심한 듯 뿌려져 있는 음악 관련 서적들이 엔틱한 느낌을 연출한다. 여행을 가서 좋은 서점을 만난 것처럼, 괜히 책도 한 번 열어 보게 된다.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다. 바로 진공관 오디오다. 성인 남자 허리까지 오는 스피커와 함께 세트인데, 오디오를 모르는 사람이 봐도 값이 나가 보인다. 자세한 설명은 차치하고, 어떤 소리가 날지 궁금했다. 이상조 씨가 오디오를 켠다. 진공관이 충분히 예열되지 않은 상황임에도 풍부한 소리가 공간을 압도했다.

재즈를 들려줬는데, 음악 무식자가 들어도 좋은 음악과 좋은 오디오인 것은 확실했다. 겨울 길목에 들어선 요즘, 이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둘러앉아 커피 한 잔에 손을 녹이며 음악으로 마음을 데운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힐링이 뭐 별거 있겠나.

다락방의 불빛은 어린 시절, 나만의 시간을 보낸 다락방의 향수를 자아냈다. 일기장을 숨기고, 부모님 몰래 모아 놓은 딱지를 모셔놓고. 이렇게 묻어야 할 나만의 비밀이 담긴 다락방처럼, 이상조 씨의 공간은 은행원 이상조가 아닌 인간 이상조의 내면 그대로가 담겨있었다.

이상조 씨는 이곳에서 정기적으로, 때론 비정기적으로 음악회를 연다. 사실 음악회라 하면 거창하고, 음악을 진지하게 즐기는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듣는 것이다. 여기에 음악에 대한 배경 지식이나 사연 등을 곁들며 음악의 감칠맛을 더하는 게 이상조 씨의 역할이다. 귀로 듣고, 맛보고, 씹고 하기 때문에 이상조 씨의 설명은 소화가 잘 된다. 그런 이유로 이상조 씨는 청주에서 ‘뮤직 스토리텔러’로 명성이 자자하다. 당일 음악회에 누가, 몇 명이 올지 누구도 모른다는 것이 또 다른 재미 포인트이기도 하다.

공연 모습. / 사진=이상조 씨 페이스북.

그렇다면 이상조 씨는 왜 굳이 자기 돈을 써가며 이런 공간을 지역사회에 개방한 것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이 가진 좋은 음악을 혼자 듣는 게 뭔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처음에는 몇몇 지인들과 함께 듣다가 소문이 나면서 규모가 커졌고 지금은 음악회가 돼버렸다. 2015년부터 현재까지 개최한 크고 작은 음악회만 29회다. 평균 참석자는 40여 명. 최근 MBC 공개홀에서 했을 때는 약 450명 정도가 자리했다. 상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지적 호기심이 강한 그는 음악의 사람에게 주는 영향이 구체적으로 궁금해 중앙대에서 음악치료교육 석사과정을 밟았다. 법대생인 그가 학사와 전혀 상반되는 음악을 석사로 선택한 것은 순전히 그가 결정한 일이다.

이상조 씨는 음악에 대한 확고한 신념도 내비쳤다.

그는 “요즘처럼 일분일초가 바쁜 시대에 가만히 앉아 음악을 듣는다는 게 팔자 좋아 보이고 시간 낭비인 것 같지만 꼭 그렇지 않다”며 “허비하는 시간이 없으면 채울 수 없다. 덜어야 채울 수 있다. 고무줄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다 놓으면 제자리로 가는데, 계속 당기고만 있으면 언젠가 탄력을 잃는다. 삶의 탄력을 유지하려면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기계도 24시간 틀어 놓으면 열난다”고 말했다.

이상조 씨의 페이스북 대문 소개글은 ‘서툴더라도, 반짝이게 살아갈 것’이다.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뿜어내고 있는 그는 서툴지 않고, 지금 충분히 반짝이고 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이 지역 사회에 많이 등장해 조금 더 밝은 사회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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