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를 바라보는 시선들
원격의료를 바라보는 시선들
  • 이주현 기자
  • 승인 2018.09.27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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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의 의료계 소식통 - 세 번째 이야기

최근 원격의료 얘기가 솔솔 나오더니 이제는 찬반이 극명하게 갈린 논란으로 확대됐습니다. 원격의료는 어제오늘 나온 얘기가 아닙니다. 그동안 보건의료 시민단체와 의료인 등의 반발에 부딪혀 번번이 법 개정이 무산됐었지요. 이번에 정부가 제한적 원격의료 도입 추진을 위한 의료법 개정 등을 하는 것을 두고 의료계에서는 불편한 시선들이 감지되고 있고요.

정부는 제한적 원격의료 추진이 의료기기 등 관련 산업 육성을 위한 것이 아니고 의료인의 대면 진료가 어려운 군부대와 원양어선, 교정시설, 도서벽지 등 지역을 대상으로 의료 접근성 향상을 위한 취지라며 의료계를 다독이고 있지만 불신은 오히려 커지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원격의료가 뭐길래 이러는 걸까요.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의료인 간 먼 거리에서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진료에 대한 자문을 구하는 것입니다. 현행법에서 의료인과 환자 간 원격의료는 불법입니다.

의료 취약계층의 의료이용 접근과 형평성 개선을 위해 새로운 의료기술을 활용한다는 것인데, 일반인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반길만한 소식이지요. 그런데 의료계가 바라보는 시선은 분명 다릅니다.

의료계가 우려하는 부분을 정리하면 크게 △오진에 따른 환자의 건강권 침해 △기기 구축 비용 및 과잉진료 유발로 인한 비용 부담 △대형병원 환자 쏠림현상 가속화 △이에 따른 의료전달체계 붕괴 △원격의료의 안전성 및 유효성에 대한 검증 절차 미흡 등으로 나뉩니다.

특히 오진에 대한 문제에 대한 염려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현행 의료법 34조에 따르면 원격의료를 하는 자(이하 원격지 의사)는 환자를 직접 대면해 진료하는 경우와 같은 책임을 진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또 원격지 의사의 원격의료에 따라 의료행위를 한 의료인은 그 의료행위에 대해 원격지 의사의 과실을 인정할 만한 명백한 근거가 없으면 환자에 대한 책임은 현지 의사에게 있는 것으로 본다고 돼 있고요.

만약 환자가 의사에게 화상으로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던 중 원격의료 장비 화면이 끊기거나 해상도가 낮아 의사가 오진했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할지 따져 봐야 할 문제입니다.

2016년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보면 원격의료 장비가 환자의 것이면 환자는 의사에게 오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환자나 의사 누구도 소유하지 않은 '통신망'의 상태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오진 등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규정은 없는 실정입니다.

당시 입법조사처는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도입 쟁점과 형후 과제’란 보고서를 통해 원격의료의 오진 가능성과 분쟁 발생 증가 등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이 밖에도 환자의 민감한 의료정보가 외부로 유출될 위험이 크다는 점, 노인·장애인 등이 스마트폰 앱·개인용 컴퓨터 등을 쉽게 다루기가 어렵다는 점 등을 개선해야 한다고도 조언했고요.

충북 청주지역 A의사는 "원격진료에 대한 책임 소재가 명확하지 않고 오진 등으로 인한 폐해가 분명히 있을 텐데 이런 점에 대한 대책이 있는지 묻고 싶다"며 "만약 오류가 생겼을 때 자칫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다른 B의사는 "의료행위는 기본적으로 의료인과 환자가 직접 만나는 대면진료가 원칙인데, 원격의료를 통해 비대면 진료를 하다 보면 환자를 정확히 살펴볼 수 없어 생기는 문제들은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 것인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가뜩이나 대형병원 쏠림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지방 병·의원들의 경영 상황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는데 의료기관 전달체계가 무너져 결국 국민들에게 피해가 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1차 의료라 하면 흔히 말하는 동네의원입니다. 의료가 필요하거나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처음 의료인력과 접촉할 때 제공되는 일반적인 의료를 말합니다. 공익과 아예 연관이 없지는 않지요.

만약 동네의원을 찾은 환자의 증상이 가벼우면 치료하고, 의사가 큰 병원에서 치료 받아야겠다는 판단을 하면 소견서를 써줍니다. 그러면 환자는 종합병원이던 대학병원이던 내원하게 돼죠. 이게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의료전달체계입니다.

그런데 최전방에 있는 1차 의료기관이 무너지면 병의 경중과 상관없이 큰 병원에 환자가 몰리게 돼는데, 이때 악순환이 되풀이됩니다. 결국 가벼운 병에도 의료비를 쓰게 돼 건강보험 재정이 낭비되는 점을 의료계는 우려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영세한 동네의원에서 정보통신기기 등 고가의 장비를 들일 환경이 되는지도 의문입니다.

정부가 말하는 의료 접근성이 열악한 지역을 대상으로 제한적 원격의료를 시행한다 해도 결국 전면적인 원격의료로 확대되는 전초가 될 것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안치석 충북의사회장은 <특별기고>를 통해 "글로벌 원격의료 기술과 산업 효과를 의사가 단지 제 밥그릇 챙기려 반대하는 것으로 비치는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며 "의사는 기술적 진보를 거부하는 러다이트 운동의 후예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대한의사협회에서도 의사와 환자 간 비대면 진료를 ‘의료 행위’라고 판단할 수 없고, 안전성ㆍ유효성에 대한 충분한 검증 절차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 등을 들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의료계의 입장에 대해 불편해하는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원격의료’란 키워드를 치면 여러 개의 청원 글이 나옵니다. 청원 참여율은 저조하지만 시민들이 원격의료를 바라보는 시선을 어느 정도 감지할 수는 있지요.

지난 8월 25일 청원 마감된 ‘원격의료 시행 요청’이란 글에서 한 청원인은 “원격의료는 단순 시대적 흐름이 아닌 좁은 땅 떵어리에서 지역 불균형에 수도권 밀집을 완화할 수 있는 대책”이라며 “원격의료의 시행은 없는 시간 쪼개서 병원 적게 방문하고 그로 인해 남는 시간은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싶다. 7~8억 원 하는 서울보다 공기 좋은 지방에서 좋은 진료받고 살고 싶다”고 토로했습니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이오·제약업계 입장도 일단 원격의료에 대해 찬성하는 모양새입니다. 제한적으로나마 원격의료가 도입되지 않으면 원격의료 산업의 골든타임을 놓쳐 K바이오의 글로벌 경쟁력에 제동이 걸릴 것이란 시선도 있습니다.

원격의료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의견에 이견은 없습니다만 의료계 전문가들과 이 문제를 깊게 논의하고, 이해당사자간 충분한 사회적 합의와 안전성 검증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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