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키우던 서장, 경찰청 차장이 되다
토끼 키우던 서장, 경찰청 차장이 되다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8.08.15 1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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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개혁의 아이콘…충북 진천군 출신 임호선 치안정감
학창시절 꿈은 방송기자 “어차피 하는 일 비슷하잖아요”
임호선 경찰청 차장. 사진제공=임호선

웃음소리만 듣자면 만화 속 주인공이 살아나온 것만 같다. 어느 만화에서 봤던가, 더벅머리 소년이 해맑게 웃는 모습과 그 웃음소리가 눈에 선하고 귀에 맴돈다. 60고개를 향해 올라가는 중년남성의 웃음소리라면 누가 믿을 것인가. 그 웃음의 주인공은 임호선 경찰청 차장이다.

충북 진천군 초평면이 고향인 임호선 차장은 7월25일 단행된 경찰 고위직 인사에서 치안정감으로 승진함과 동시에 경찰청 차장이 됐다. 치안총감인 경찰청장 아래 단 여섯 명에게만 주어지는 계급장이니 10만여 명 경찰공무원 중 ‘만인지상 일인지하’다. 그것도 치안감을 단지 불과 7개월여 만의 승진이라 더욱 화제가 됐다.

“어리둥절하죠. 저도 이런 인사를 처음 본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제가 경무관으로 5년2개월을 보냈거든요. 경무관 계급정년이 6년이니까 경무관으로 옷을 벗을 뻔했는데, 그동안의 제 이력을 좋게 봐주신 것 같습니다.”

이제와 생각하면 ‘경찰이 되지 않았으면 어떡했을까’ 싶지만 어릴 적 꿈은 경찰이 아니었다. 지금은 폐교가 된 진천군 초평 오상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증평중(31회), 충북고(7회)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그의 꿈은 ‘방송기자’였다. ◯◯대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하겠다는 정확한 목표도 설정돼 있었다. ‘9시 뉴스’ 앵커를 꿈꿨단다. 그런데 고2 때 경찰대학교가 개교했다.

“유엔이 생긴 목적은 세상을 천국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지옥으로 떨어지는 걸 막아보자는 것이었답니다. 3차 세계대전 만은 막자. 세계대전으로 비화될 수 있는 전쟁은 국지전이라도 유엔군이 응징하자. 그게 6.25였다죠?”

기자 대신 경찰이 된 이유에 대한 답변치고는 ‘선문답’이다. 보충설명이 이어졌다.

“언론과 경찰이 비슷하잖아요. 잔디를 심고 가꾸는 사람도 있지만 풀 뽑고 돌보는 사람도 필요한 것처럼…. (경찰의 임무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 아닌가요? 경찰은 ‘Wants라기보다는 Needs 성격의 조직인 것 같아요. 그래서 경찰동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합니다.”

26년 만에 580호를 낸 쪽지신문 <발전>

기자가 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인지 임호선 차장은 1992년부터 <발전>이라는 이름의 쪽지신문을 만들고 있다. ‘1년이 멀다하고 만났다 헤어지는 경찰 살이에서 서로 소통하기 위해서’란다. 한때는 종이로 낸 <발전>을 책으로 엮기도 했는데 26년이 흐른 지금, 8월10일자로 580호가 발행됐다.

임호선 차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경찰개혁의 아이콘이다. 1986년 경찰대를 졸업하고 현업에 몸담은 이래 줄기차게 ‘인권경찰’이나 ‘경찰 수사권 독립’ 같은 화두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그의 이력을 보면 ‘2012년 경찰청 경찰쇄신추진단 팀장’, ‘2015년 경찰청 새경찰추진단 단장’ 등이 눈에 들어온다. 올해는 이명박 정부 시절에 이뤄진 경찰의 조직적 댓글 조작에 대한 특별수사단장을 맡기도 했다.

충북지방경찰청 수사2계장으로 근무하던 2000년 12월, 천주교 인권단체와 함께 ‘경찰의 인권수사 관련 토론회’를 개최했던 것은 지금까지도 경찰 내‧외부에서 회자되는 사건이다.

“경찰의 인권의식도 많이 개선됐죠. 하지만 국민의 기대수준도 같이 높아지니까 여전히 격차가 존재합니다. 최근 ‘워마드’를 둘러싼 경찰수사를 지켜보면서 ‘성인지’ 교육을 강화하고 ‘인권감수성’을 높여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헌법 10조 2항이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에요. ‘기본권’만 생각해도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경찰이 더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 임 차장의 지론이다. 또한 공부는 임 차장의 개인 주특기다.

“경찰개혁과 관련해 제가 이룬 성과 중에는 3조2교대에서 4조2교대를 도입한 것도 있지만 ‘상시학습제도 90시간’을 확보한 것도 있습니다. 행정공무원들은 100시간을 의무적으로 학습하는데, 경찰은 특정직이라는 이유로 예외였습니다. 격무에 시달리는 것은 이해하지만 경찰은 더 공부해야 합니다.”

그 스스로도 충북지방경찰청 기획계장 때 청주대 행정대학원에, 청주상당경찰서 수사과장 때는 충북대 법무대학원에 진학했다. 충북을 떠나면서 매듭짓지 못했던 것을 2010년, 건국대 사회과학대학원 법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으며 마무리했다.

진천경찰서장 시절, 민원실장(고향 선배) 정년 퇴임식에서 '사랑했어요'를 열창하는 임호선 서장. 사진=임호선 제공

임 차장에게 충북은 ‘태어나서 자란 곳’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제는 천직이 되어버린 경찰 공무원으로서 경위-경감-경정-총경에 이르기까지 애환의 12년을 고향 충북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2007년 충주경찰서장으로 있다가 1년 만에 고향 진천경찰서로 왔어요. 말 못할 곡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그때가 제일 보람도 있고 행복했던 때였습니다. 청주에 있는 지인들과 더 정을 나누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충북지방청장이 되어 한 번 내려올 기회가 있겠지 싶었는데, 그건 뜻대로 되지 않았으니….”

임호선 차장은 진천서장 시절 경찰서 울타리 안에 토끼를 키웠다. 아이들에게 무섭지 않은 경찰서를 만들고 싶어서였다. 직장 부하였지만 고향 선배의 정년퇴임식에서는 직접 기타를 연주하며 김현식의 ‘사랑했어요’를 열창했다. 지금도 임 차장은 기회만 되면 기타연주와 노래를 들려준다.

기타솜씨는 그런대로 수준급이지만 오랜 연주경력에 견줄 때 큰 발전은 없는 편이다. 노래실력 역시 세월이 흐른다고 나아지는 게 아니니 어쩔 도리가 없다. 되레 빛나는 것은 변치 않는 ‘사람 임호선’이다.

*이 인터뷰는 대면이 아닌 전화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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