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설 순국 100주년 ‘연해주’ 하늘길 열려
이상설 순국 100주년 ‘연해주’ 하늘길 열려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7.02.22 05:0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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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티아 항공, 4월부터 청주공항-러 극동지역 주2회 취항
로얄관광, ‘하바롭스크-블라디보스토크’ 관광상품 2종 출시
헤이그 열사가 네덜란드까지 대여정을 시작했던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 이상설 선생은 이곳에서 이준 선생과 합류했다.

나라 잃은 백성들은 압록강을 건너 북간도로,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로 갔다. 일제의 등쌀을 피해 살길을 찾아 나선 유랑이었고,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꾸리려는 투쟁의 길이었다. 연해주(沿海州)는 러시아 영토였다. 그들은 연해주를 ‘블라디보스토크’라고 불렀다. ‘동방을 지배하라’는 뜻이다. 유럽에 머리를 둔 러시아제국은 얼지 않는 항구를 찾아 남하하다가 이곳을 발견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진천군 출신의 애국지사 이상설 선생이 독립운동을 위해 국경을 넘었던 곳이고, 조선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47살의 나이에 숨을 거둔 통한의 땅이기도 하다. 그런데 선생의 순국 100주년을 맞는 2017년, 청주국제공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를 연결하는 하늘길이 열린다.

아쿠티야 항공기.

청주-블라디보스토크, 청주-하바롭스크를 각각 주 1회씩 왕복 운항하는 항공사는 러시아 야쿠티아 공화국의 국영항공기인 ‘야쿠티아항공’이다. 야쿠티아항공은 4월5일~12월27일까지 매주 수요일에는 하바롭스크로, 토요일에는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난다.

로얄관광은 하바롭스크로 들어가 블라디보스토크로 나오는 3박4일 상품과, 블라디보스토크로 들어가 하바롭스크로 나오는 4박5일 상품을 각각 출시했다. 현지에서 두 도시를 연결하는 교통편은 시베리아횡단열차다. 아주 짧은 구간이지만 아시아를 가로질러 유럽으로 가는 열차의 동쪽 출발점을 달려볼 수 있다.

이상설 선생은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듬해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북간도 연길현 용정촌으로 망명했다. 선생은 이곳에 만주지역 최초의 민족교육기관인 ‘서전서숙’을 세웠다. 1907년, 선생은 고종의 밀사로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파견된다. 선생은 각각 블라디보스토크와 페테르부르크 역(驛)에서 이준, 이위종 선생과 합류했다.

이후 선생은 영국과 미국 등을 돌며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세계에 알린 뒤 1909년, 다시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온다. 선생은 이곳에 있던 한국인 마을 ‘신한촌’에 ‘성명회’ ‘권업회’에 같은 독립운동조직을 만들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있었던 한인 독립운동근거지 신한촌이 있던 자리.

1914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 최초의 망명정부라 할 수 있는 ‘대한광복군정부’가 수립된다. 이상설 선생은 이 정부의 최고책임자인 정통령에 선임됐다. 이를 통해 당시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 선생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해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선생은 중국 상하이에서 결성된 ‘신한혁명당’에 합류한다. 독일과 일본이 전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하고, 독일과 연합해 일본을 공격하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신한혁명당이 꿈꿨던 계획이 좌절되면서 상심도 깊었다. 선생은 1917년 니콜리스크에서,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통한의 생을 마감한다.

청주공항에서 출발하는 두 종의 상품에는 블라디보스토크의 독립운동의 흔적을 찾아보는 코스가 포함돼 있다. 독립운동의 근거지였던 신한촌에 세워진 기념비와 이상설 유허비를 비롯해 한인 이주 140년 기념관, 안중근 의사 기념비 등을 볼 수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발해 성터가 남아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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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2017-02-23 09:16:35
대한민국 최초의 외교관. 진천출생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