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식의 여행스케치]멋과 맛이 어우러진 정남진 장흥
[강대식의 여행스케치]멋과 맛이 어우러진 정남진 장흥
  • 정준규 기자
  • 승인 2016.12.26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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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식 사진작가·수필가

[글ㆍ사진 강대식 사진작가ㆍ수필가] 출사를 떠날 때면 ‘오늘은 어디로 가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문제로 장소 선택에 애를 먹는다. 물론 회원들이 인터넷상에 올라온 사진들을 조회해 보거나 먼저 촬영을 다녀온 사람들로부터 정보를 파악하기도 하지만 목적지 도착시간을 고려하여 청주에서 출발하는 시간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12월에 떠나는 출사지(出寫地)는 다른 계절에 비하여 선정하기 어렵다.

풍경을 위주로 떠나는 촬영여행에서 나뭇잎을 모두 떨어트리고 빈 가지만 남겨둔 나목(裸木)들이 을씨년스럽게 서있는 풍경은 좋은 작품을 만들기에는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겨울 촬영지는 일출을 촬영할 수 있는 바닷가를 선호한다. 그러다 보니 이십년 동안 겨울에는 동해바다를 향하여 달려갔던 것 같다.

 

늘 같은 고민을 하다가 달려갔던 고정관념을 버리자고 생각하고 선택한 곳이 전남 장흥군 용산면 상발리에 위치한 ‘소등섬’이다. 우리나라 지도를 펼쳐놓고 서울을 기점으로 국토의 정 동쪽을 정동진이라 할 때 정남진이 장흥이다. 청주에서 약 4시간이 소요되는 장흥의 소등섬에 도착한 새벽, 동쪽하늘에 희미한 여명이 수줍은 새색시 볼처럼 불그스레 물들어 온다.

밤잠을 설치고 달려온 사진작가들이 하나 둘 방파제(防波堤) 위에 삼각대를 설치하기 위하여 분주하다.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지만 나만큼이나 열정적인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이 놀랍다. 두꺼운 외투로 무장을 하고 눈만 빼꼼히 내 놓고 늘어선 사람들의 뒷모습이 어둠에 잠겨있지만 희미한 윤곽만으로도 아름답다. 대자연이 만들어 내는 아름답고 황홀한 찰나의 순간을 담으려는 열정이 바닷가의 차가운 한파(寒波)를 밀어낸다. 어느 틈엔가 갯벌은 바닷물이 썰물로 빠져나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처음 ‘소등섬’의 지명을 들었을 때는 ‘소의 등’처럼 생겨서 ‘소등섬’이라 부르는지 알았다. 그런데 소등섬(小燈)은 ‘작은 등불’이라는 뜻에서 이름 붙여진 곳이란다. 옛날 고기잡이를 나간 남편이나 가족들을 기다리며 여인들이 호롱불을 켜 놓고 그 불빛을 보고 가족들이 무사하게 돌아오기만을 기원하던 곳이라고 한다. 남포마을에서 보면 남쪽 바다 쪽에 있는 작은 섬에 불과하다. 마을과 멀리 떨어지지도 않았고, 썰물이 들어오면 섬이 되었다가 밀물이 되면 섬이라기보다는 마을과 이어진 작고 낮은 언덕 정도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어두웠던 밤이 바람에 쫓겨 달아나듯 서서히 밀려가고, 동쪽하늘에 붉은 기운이 강해진다. 바다 속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일출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섬 뒤편에서 바다를 물들이며 달려오는 여명이 바다를 적시고, 하늘과 구름에 채색하고, 마침내 대지를 뒤덮는다. 붉은 여명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오다가 어느 순간 최정점에 이른다. 숨막히는 고요 속에 카메라의 셔터(shutter) 소리만이 정적을 깬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입으로 내는 소리는 들을 수 없다. 무언중에 행하는 의식처럼 카메라 뷰파인더에 눈을 맞대고 손가락으로 피사체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을 뿐이다. 같은 장소 같은 방향을 향하여 촬영을 하지만 각자가 촬영한 사진 속에 나타나는 영상은 제각각이다. 각자 촬영하고자 하는 피사체에 자신의 노하우와 감정을 심어 넣기 때문이 아닐까.

 

섬을 바라다 볼 수 있는 남포마을의 끝자락 위에는 2011년 세운 등불, 희망, 소원을 상징하는 천지인 조형물이 있고, 2013년 섬에는 당(堂)할머니 상(像)과 제단을 건립했다.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밀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명에 붉게 물들었던 갯벌위로 포말을 감싼 바닷물이 출렁인다. 바닷가에는 비닐하우스를 지어 놓고 정성스레 기른 굴을 채취하여 주민들이 굴을 까고 있다. 이른 아침임에도 아무런 난방장치도 없이 겨우 바람만 막을 수 있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굴을 손질하고 있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애잔하다.

이곳에서도 굴이 많이 생산되어 주변 식당에서 굴구이나 굴떡국과 같은 굴요리를 맛볼 수 있다. 시장이 반찬인지라 소등섬과 가장 가까운 식당에 들려 굴떡국을 시켰다. 특별한 반찬 없이 김치와 깍두기 그리고 굴떡국을 큰 그릇에 담아 내온다. 굴은 별로 없는 떡국이지만 아주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 가격도 착하여 부담이 없고, 식당 안에는 각 계절별로 소등섬을 촬영한 사진이 가득 걸려 있어 어느 계절에 촬영을 하면 좋은지 알 수 있는데 겨울철 풍경이 제일 마음에 들고 멋지다

 

아침을 먹은 후 장흥군 대덕읍 옹암리 선착장으로 향했다. 이곳에 가면 매생이를 수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내가 찾아간 옹암리 선착장은 작업장으로 나가는 어부들의 소형 어선은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매생이를 채취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예년 같으면 이맘때쯤에 매생이를 채취하였다고 하는데 금년에는 날씨가 포근하여 매생이가 아직 붙지 않아 어민들이 애를 태우고 있었다. 바다를 가득 채운 양식장에는 긴 대나무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그 대나무를 기둥삼아 가로로 작고 얇은 대나무를 발처럼 역어 묵어 두었다. 바닷물이 들락거리면서 이 발처럼 생긴 위에 매생이가 자라고, 매생이가 자라면 김처럼 떼어다가 상품화하는 것인데 바닷물 밖으로 드러난 매생이 발 위에 매생이는 보이지 않는다. 방파제 시멘트에 붙어있는 것 말고는 매생이를 보지 못했다.

 

아쉬움을 달래며 해변 길을 따라 정남진 전망대로 향했다. 옹암리 선착장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전망대는 외관이 특이했다. 타워는 지하 1층 지상 10층 약 46m 높이로 건축되어 있는데 마치 타워가 곤봉처럼 몸통 위쪽에 둥근 공이 올려져 있는 형상이다. 떠오르는 태양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하는데 타워와 건물이 따로 세워져 있는 것처럼 지어 졌으나 건물을 통해서만 타워를 오를 수 있도록 하였다.

타워 앞에는 커다란 율려가 세워져 있다. 타워에 올라가면 멀리 소록도, 득량도, 연흥도, 생일도, 거금도, 금일도와 같은 섬들도 볼 수 있으며, 요즘에는 해맞이 장소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계단을 이용하여 올라가면 포토존, 푸드 홍보관, 이야기관, 축제관, 추억 여행관, 문학영화관, 북카페 등 각 층마다 독특한 주제로 추억을 만들 수도 있어 사진도 찍고 장흥의 문화와 유래도 알 수 있다.

 

정남진 전망대에서 용산면 방향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2005년 9월 6일 문을 연 방촌유물전시관이 있다. 아담하지만 2층으로 지어진 전시관 내부는 깨끗하다. 장흥 방촌(長興 傍村)은 장흥 위씨 집성촌이다. 이 유물전시관에는 호남 실학의 대가인 존재(存齋)·계항(桂巷)·계항거사(桂巷居士)로 불리던 위백규(魏伯珪) 선생의 유물은 물론 장흥 위씨 집안의 각종 유물과 이 지역의 농경과 주거, 음식과 복식문화, 놀이문화, 세시풍속 등의 유물이 전시되어있다.

시골에 위치한 작은 전시관이라 하여 그냥 지나칠 곳이 아니다. 위백규 선생은 존재집(存齋集), 정현신보(政絃新譜), 사서차의(四書箚義), 환영지(寰瀛誌), 본초강목(本草綱目), 격물설(格物說), 원류(原類), 연어(然語) 등을 집필한 대학자였고, 그의 저서 대부분이 이곳에 보관 중이란다.

 

유물전시관 주변 방촌지역에는 존재고택, 죽헌고택, 신와고택, 근암고택, 판서공파종택, 오헌고택 등이 있다. 작은 마을에 이와 같이 여러 채의 고택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 지역에 높은 벼슬을 했던 사람들이 다수 살았던 마을이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전시관의 관장을 맡고 있는 위성 선생에게 “주변에 큰 소나무가 있느냐”고 묻자 “천관으로 가는 방향으로 가면 장천재 인근에 ‘태고송’이라고 불리던 소나무가 있었는데 몇 년전 벼락을 맞아 고사하여 현재는 볼 수 없다”고 하면서 “도립공원 입구에 가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나무를 볼 수 있다”고 하여 찾아 나섰다.

도립공원 입구를 지나 영화촬영장으로 사용하던 세트를 지나자 커다란 소나무가 나타났다. 멀리서 보면 그냥 우선을 쓴 커다란 나무 하나인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곰솔이다. 표지판에는 관산읍 옥당리 166-1번지라는 장소와 함께 높이 9m에 밑둥 둘레가 3.8m이고 가지가 옆으로 26m나 뻗어 있다고 적혀 있다. 이 효자송(孝子松)이라 불리는 이 소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56호로 수령이 약 300년 정도라고 한다.

효자송이 된 유래는 마음씨 착한 위윤조라는 사람이 밭농사를 짓던 홀어머니가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심었다고 하여 ‘효자송’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크기로 보면 어머니 한분이 아니라 동네 사람 모두가 넉넉하게 쉴 수 있을 만큼 공간이 넓다. 아들의 효성이 300년이 넘도록 후세에 전해오는 것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소나무가 큰 팔을 벌리고 넉넉하게 품어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은 모습이다.

 

유물전시관에서 용산면으로 나가는 23호선 국도 길가에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벅수 형태의 전라도 중요 민속문화재 제275호로 지정된 방촌리 석장승 2개가 마주하고 있다. 보통 벅수나 천하대장군은 한 쌍을 나란히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곳 석장승은 길을 사이에 두고 마을로 들어서는 초입에 마주 세웠다. 서쪽의 장승은 둥근 눈에 반달 모양으로 입이 길게 올라간 수줍은 새색시의 미소처럼 스마일 형태의 얼굴형이다. 그럼에도 몸통에는 진서대장군(鎭西大將軍)이란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에 반하여 동쪽의 장승은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굵은 선으로 얼굴을 표현하여 강인한 느낌을 준다. 이 돌장승은 마을로 부정한 악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마을 수호신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겨우 장흥의 3분의 1 정도를 지나왔는데 하루가 다 저물어 간다. 아직 갈 곳이 많은데도 시간이 여의치 않아 장흥에서 유명한 장흥삼합(소고기, 키조개의 관자, 표고버섯)을 잘 한다는 식당을 찾아 갔다. 토요시장내에 위치한 상가지역이라 많은 사람들이 시장구경을 하며 식당으로 올라간다. 자리를 잡고 장흥의 특산품인 한우를 곁들인 삼합을 주문하였다. 명성에 맞게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너무 많이 시켜 더 이상 고기를 배가 불러 먹을 수 없다고 투정을 부릴 정도로 푸짐한 저녁식사가 되었다. 이 포만감은 장흥에서 느낀 기분 좋았던 여행에 대한 특별한 보너스가 되어 가슴에 와 닿는다. 행복하고 신바람 나는 장흥 나들이는 내년에도 다시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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