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에서 이문재 시집 구해 읽었어요”
“스위스에서 이문재 시집 구해 읽었어요”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6.12.22 07: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금 여기가 맨 앞> 추천하는 駐 제네바 윤동진 공사참사관
증평 출신 행시 35기, 농축산식품부 소속으로 세계 각지 파견

‘나무는 끝이 시작이다. 언제나 끝에서 시작한다.’ 이문재 시인의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의 시작이자 맨 앞이다. 끝이 곧 시작이라는 이 시는, ‘기억 그리움 고독 절망 눈물 분노도 / 꿈 희망 공감 연민 연대도 사랑도 / 역사 시대 문명 진화 지구 우주도 / 지금 여기가 맨 앞이다’라며 끝을 맺는다.
 

이문재 시인의 이 시집을 읽기 위해 스위스에서 한국으로 출장을 오는 동료에게 ‘꼭 구해 오라’고 각별한 당부를 전했던 이가 있다. 그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이문재의 시를 읽고 또 읽는다고 했다.

그는 윤동진 주(駐) 제네바 대표부 공사참사관이다. 외교관리 같지만 소속은 농림축산식품부다. 윤 공사는 전 세계 140여 개 한국대사관 중 가장 바쁜 곳이 주 제네바이고, 그 중에서도 제일 바쁜 것이 자신이 맡고 있는 농업협상이라고 했다. <지금 여기가 맨 앞>이라는 시를 좋아하는 이유가 짐작이 갔다.


그런 그가 한국에 출장을 왔다가 12월21일 출국을 하루 앞두고 청주시 서원구 산남동의 한 찻집에 나타났다. 윤 공사의 출장지는 세종시였다. 대한민국의 베이스캠프는 세종시라고 했다. 세종시에서 업무를 보고 출국 전 처가가 있는 청주에 들렀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는 ‘맨 앞’에 섰던 순간이 많았을 것이다. 충북 증평 출신으로 서울대 경영학과 87학번인 윤 공사는 1991년 행정고시 35기로 공직에 입문했다. 그가 택한 곳은 당시 농림수산부였다. 농림부를 선택한 이유는 무얼까?

 

“1987년에 대학에 들어갔잖아요. 그 시대에 고시공부를 한답시고, 결국 개인의 성공을 위해 머리를 싸매는 건 솔직히 부끄러운 일이었어요. 시대와 맞서야 하는 때였잖아요. 어렵고 힘든 사람들 편에 서자, 제도를 만들고 세상을 디자인하자…. 공무원이 되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지, 생각했어요.”

 

농업부처를 택한 것은 시대에 대한 부채의식이었다. 윤 공사가 왜 모든 시를 좋아하는지 이해가 됐다. 지금은 조직문화에 길들여지고 적응이 됐다고 했다. 관성에 젖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부처마다 있는 독특한 문화가 있는데, ‘절이 싫으면 ○이 떠나듯’ 언제든 옮길 수도 있다는 얘기다. 윤 공사는 부처를 떠나는 대신 해외파견을 선택했다.


농식품부에서는 주로 기획, 예산, 총괄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기획재정담당관, 통상협력과장, 지역개발과장, 식품산업정책관(국장급) 등이 윤 공사가 거친 자리다. 조직 내에서 변화와 혁신의 아이콘으로 통하는 윤 공사는 2004년 국무조정실 규제개혁기획단에 파견돼 불합리한 규제와 관행을 없애는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2014년 초 국장으로 진급한 뒤에는 식품업계, 학계, 현장전문가 등 3568명에게 자신의 생각을 담은 메일을 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윤 공사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해외파견을 지망해 왔다.

 

“2007년 8월부터 2011년 1월까지는 프랑스 파리에 주 OECD 대표부 주재관으로 있었어요. 우리나라는 ‘영미(英美) 스타일’의 국가시스템이라 유럽과는 차이가 많죠. 그래서 관심이 가는 것은 많지만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겠죠. 프랑스에서 돌아와 다시 유럽 쪽 대사관에 파견근무를 신청했는데, 장관님이 놓아주시지 않았어요. 그런데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공직사회도 충격과 무기력에 빠졌죠. 장관님이 ‘가라, 다녀와라’ 하시더라고요.”


윤 공사는 2014년 8월, 스위스 제네바로 왔다. 고3 아들과 중2 딸을 뒀다는 윤 공사는 시(詩)에서 차(茶)로, 그리고 자녀들에 대한 교육문제로 화제를 옮겼다.


“스위스는 고교졸업생의 3분의 1정도만 대학에 가요. 입시도 없고요. 대신 대학에 가도 1학년 때 상당수가 잘려요. 사실 대학에 갈 요인이 없으니까. 스위스는 유럽에서도 아주 독툭한 나라인데 국민들이 동의한 고비용 사회에요. 아내가 그러더라고요. ‘바느질로 옷을 꿰매거나, 외과의사가 수술한 상처를 꿰매거나 노동의 가치는 차이가 없는 것 같다’고. 누구든, 어떤 직업을 가지든 먹고살 수 있는 시스템이죠. 대신 국가예산에서 복지로 들어가는 돈은 많지 않아요.”

스위스 하면 알프스와 하이디만 생각했는데 참 신기한 나라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